뻔뻔하도다, TV 연기대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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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 19면

지난 연말, 방송사들의 연기대상 시상식을 함께 보던 아들이 수상자를 척척 알아맞히는 엄마가 신기했던 모양이다. 무지몽매하긴, 이렇게 쉬운 정답 찾기가 어디 있는데. 일단 얼굴이 보이는 후보가 수상자이고, 대상은 최고 시청률 드라마의 주연, 그것도 최우수상 후보에서 최우수상을 안 받은 나머지 사람이며, 애매하다 싶으면 무조건 공동 수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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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시상식에서 굳이 발전한 점을 찾자면 이제 과감히 대상까지 공동 수상자를 내기로 했다는 정도랄까. 그 말 앞엔 ‘과감히’가 아니라 ‘뻔뻔하게도’라는 수식어가 더 적당할 듯하다. 골치 아프다 싶으면 두 명이고 세 명이고 공동으로 줘버리는 그런 고민이 필요 없는 상을, ‘그래도 연말에 이거 아니면 너네가 뭘 보겠니’ 하듯 던져놓는 제작진의 후안무치함이라니.

TV 연기대상에서 상 이름을 만들어내는 그 무원칙함을 보면서 일전에 영화상을 비웃은 걸 후회했다. 영화상은 그래도 최소한 원칙이 있는 카테고리에 맞게 상을 준다. 나는 족보에도 없고 분류법에도 맞지 않는 상의 이름을 보면서 미국의 시상식이라면 영어로 어떻게 표현할까 생각해 봤다. 연기대상은 ‘베스트 액터’라 치고, 그러면 최우수·우수 연기상은 ‘베터 액터’와 ‘굿 액터’인가?

우등상과 개근상만 있던 우리 때 졸업식과는 달리 요즘 초등학교 졸업식에서는 착한어린이상·독서상·봉사상·청소상 하는 식으로 졸업생 모두가 상 하나씩을 받도록 한다는데, 연말 연기대상도 어차피 나눠먹기 식이라면 모두에게 상을 쥐어짜내서 주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10대 연기자상, 20대 연기자상 등 연령대별 연기자상은 어떤가.

또는 맡은 역할에 따라 세분해서 시어머니 상, 불륜녀 상, 싱글맘 상 등 캐릭터별 상, 그리고 PD가 뽑는 연기자 상 외에 작가가 뽑는 상, 카메라 감독·코디·메이크업 선정 연기자 상…. 뭐 이러면 시상식 때 스타들도 죄다 불러 모을 수 있고 좋지 않을까.

아무리 비웃어봐야 올 12월에도 스스로 권위고 뭐고 내팽개치고 감동도 없는 연말 방송사 시상식은 계속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리도 또 보겠지. 하지만 이렇게 가다 간 상을 줘도 가수들이 싫다고 해서 사라져 버린 가요대상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든다. 10년 전만 해도 가요대상이 오늘날처럼 이렇게 사그라질 줄은 몰랐을 거다. 그러니 안이하고 뻔뻔한 방송사 연말 시상식은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 좀 한 번 돌아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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