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저를찾아서>18."세속도시" 하비 콕스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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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세속도시』는 1960년대 유럽과 미국의 신학계의 동향과 깊이 결부돼 있다.그 당시 유럽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자들과 신학자들이 대화했고,미국에서는 케네디 시대가 열리고 흑인민권운동이 전개되면서 기독교의 세속화 논의가 활발했다.여기서 세속화란 과학의 발달로 사회에서 종교의 영향력이 쇠퇴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스가 세속화를 신학적 논의 한 가운데로 들여 오는 데 결정적영향을 준 신학자는 본 회퍼였다.나치 감옥에서 남긴 서신에서 본 회퍼는『우리는 완전히 무종교 시대를 향하고 있다.그러면 종교없는 기독교는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본 회퍼의 비종교적 기독교 해석을 미국의 상황에서 재창출한 것이 『세속도시』라고 콕스 스스로 인정했다.
본 회퍼와 함께 콕스의 세속화 이해에 영향을 준 또 하나의 독일 신학자는 고가르텐이다.고가르텐은 전후 독일의 신학계에서 세속화에 대한 성서적 근거를 제시했다.고가르텐에 의하면 성서적신앙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계로부터의 도피가 아 니라 세계를 위한 책임을 고취한다.이 책임은 세계가 신성시되는 것을 막고 피조물에 대한 우상숭배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는 데 놓여 있다.기독교 신앙은 인간을 피조물에 예속된 노예상태로부터 구출해 하느님의 자녀로 성숙하게 만든다.기독교 신앙은 이 세계를 우주적 순환의 운명에 맡겨진 자연의 마술동산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인간이 자유를 실현하는 역사의 개방된 지평으로 보게 한다.세속화란 신성시된 자연과의 원시적 합일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하느님이 지으신 세계를 자율성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역사로 경험하는 것,곧 역사화라고 할 수 있다.고가르텐으로부터 콕스는 서구의 자연과학,민주주의적 정치제도및 문화적 다원주의의 발생이 모두 세속화의 원동력인 성서적 신앙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배웠다. 콕스의 신학사상의 독특성은 세속화를 세속도시의 출현으로본다는 점에 있다.콕스에게 도시란 여러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언제나 적극적인 상징으로 남아있다.도시화는 세속화가 이뤄지는 정황을 말한다.도시화는 도시만의 현상이 아니다.
지어 농어촌 마저도 고도의 기동성,경제적 집중,그리고 대중매체의 영향과 같은 도시화의 그물을 벗어날 수 없다.따라서 도시화란 인구밀도나 지정학적 상대와 같은 양적인 개념이라기 보다 전통이 붕괴되고 다양성이 지배하는 새로운 삶의 구조 의 출현을뜻한다.콕스가 세속화를 도시화와 동일시하면서도 경계하는 것은 성서적 신앙의 근거를 상실하고 세속화가 낳은 개방성과 자유를 위협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세속주의 때문이다.그러나 콕스는 기술지배에 의한 권력의 남용과 性의 상품화 와 같은 세속주의 현상때문에 현대 기술도시가 실현하는 세속화의 해방적인 측면을 간과하려는 현대교회와 신학은 마을문화나 부족문화로 퇴행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콕스는 도시 아파트 거주자들은 고독하고 친숙한 인간관계를 원할 것이라 가정하고 도시인 가운데 마을의 친숙성의 회복을 설교하는 교회는 기독교 신앙의 친교 개념과 도시이전의 정신을 혼동한다고 꼬집는다.익명성이 충분치 못한 마을의 불편 함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사람들이 그들의 공간적인 이웃인 같은 아파트에 사는사람들과 친근하게 사귀기를 원치않는 것을 비인간적이라고 비난할일은 아니다.왜냐하면 도시인은 그가 선택한 친구만을 깊이 사귀면서도 이웃에 대한 사랑과 책임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예수의 비유에 나오는 사마리아人이 친구도 옆집 사람도 아닌 유대인곧 원수관계에 있는 대상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처럼 세속 도시속의 교회는 종교.인종.이념.계급의 차이와 차별을 뛰어넘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현 하는 친교의 공동체로서 도시 이전의 교회보다 더 잘 기능할 수 있다.
***이 민자의 나라,미국의 신학자 답게 콕스는 공간적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사상과 삶의 가능성에 개방적임을 주장하면서 현대 기술도시의 고도의 기동성을 적극적으로 평가한다.특히 그는 도시인의 기동성이 사회변화와 밀접히 연관된 것에 확 인한다.예를 들어서 북미 흑인 해방운동은 흑인 노동자들이 농업지대인 남부에서 산업중심지로 이동한 것과 흑인 청년들이 군복무를 경험한 것이 결부돼 있다.기독교 신앙의 근간을 이루는 이스라엘 예언사상의 정점도 국가가 붕괴되고 민족이 유 배되는 시기에 이뤄졌다.구약성서의 유대인들이나 신약성서의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유랑하고 집이 없었을 때 그들의 소명을 이루었다는 것은 역사와 시간의 주인이신 성서의 하느님의 기동성과 결부돼있다.따라서 이동하는 도시인은 이동하지 않는 이들보다 하느님을 우상으로 격하시키는 유혹을 덜 받는다.왜냐하면 이동하는 사람들은 마을이나 국가를 우상화 하지 않고 기존의 정치적.경제적 제도와 구조를 변화시키는데 능동적이고 개방적이기 때문이다.
고도의 기동성을 가진 현대도시 속에서 교회는 마을문화에서 비롯된 가족 중심의 교구체제라는 낡은 제도적인 함정에 빠져 있다고 콕스는 비판한다.교구중심의 교회가 급속히 분화돼 가고 있는산업도시의 경향에 역행하지 않으려면 다양한 선교 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분화돼야 한다.산업현장.병원.학교,그리고 소외지역에서선교의 공동체가 형성돼야 한다.그리하여 아직도 도시생활속에 남아 있는 부족적이고 마을문화적인 편견과 억압의 잔재를 말끔히 씻어내는 목회와 선교가 오늘날 문화 적인 의미에서 귀신을 추방하는 예언자적인 교회로 거듭나는 지름길이라고 콕스는 역설한다.
콕스의 『세속도시』는 기독교의 하느님에 대해 종교적이 아닌 세속적인 형식으로 얘기하려 한다.
***하 느님에 대한 얘기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라는 부족이나 마을의 문화에 사는 사람은 하느님을 여러 神중의 하나로경험한다.종족적인 요소를 지니는 일부 구약성서의 하느님 이해는진정한 의미의 유일神 이해라 할 수 없다.그러나 대체로 구약성서의 하느님인 야웨는 여러 神의 지배자, 곧 만군의 主로 묘사된다.종교의 형이상학의 마술로부터 해방된 현대 도시인이야말로 부족과 마을 문화속에 살던 사람들과는 달리 종족적으로가 아니라보편적으로 하느님을 경험한다.또한 세속적인 형식으로 하느님을 얘기한다는 것은 현대 도시인이 여전히 종교적인 물음을 자신의 궁극적인 관심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멈추게 한다.
콕스가 보기에 현대인은 종교에 관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녀.직업.장래 희망으로 부터 사회 정의와 세계 평화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삶의 문제에 관심한다.그러므로 콕스는 신학의 기능을 종교나 교회에 국한시키지 않고 오늘의 세계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간해방을 위한 하느님의 혁명에 세속인간이 참여하도록 초청하는데까지 확대 한다.
***朴 鍾 天 〈監神大 교수.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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