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있는 남자가 인생에도 용감한 법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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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 36면

“우리 여자들은 남자들을 존경하고 싶어 온몸이 근질근질하다고요. 제발 그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요.” 문맥만 보면 강성 페미니스트들이 1인 시위라도 벌일 듯한 이 코멘트의 주인공은 작가 시오노 나나미다. 언젠가 그녀가 이탈리아의 축구스타인 칸나바로, 말디니 등에 대해 쓴 칼럼을 읽으면서 정신을 놓았던 적이 있다.

어떤 대상에 완전히 매혹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정교한 찬미로 가득했던 글은, 축구 선수들의 이름을 지우고 그 자리에 ‘남자’를 대입하면 딱 맞을 ‘매력적인 남자에 대한 찬양시’였다. 그런 그녀가 암고양이 같은 말투로 얘기하고 있다. “남자들, 제발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요.”

약간의 오만과 편견을 앞세워 말하면, 대한민국 30대 이상 남자들이야말로 시오노 나나미의 ‘어떤’ 바람을 저버리는 대상이다. 많이 달라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보수적이고 색깔 없는 라이프스타일, 그중에서도 패션 스타일에서 더더욱 그렇다.

옷이나 외모에 신경 쓰면 남자답지 못하다고 견제당하고, 패션에 대한 학습기회마저 철저하게 박탈당했던 30대 이상 남자들이야말로 패션 사각지대에 몰린 어정쩡한 세대임에 틀림없다. 남자의 판단기준을 패션 스타일만으로 한정짓는 건 분명 폭력이다. 하지만 바야흐로 시각적 매력이 공기의 흐름을 좌우하는, 몸의 시대 아닌가.

옷 못 입는 남자들 때문에 늘 전전반측하는 어느 패션 칼럼니스트 친구가 “한국 남자들은 옷을 통해 서로 닮으려고 해. 그래야 불안하지 않고 소속감을 느끼거든”이라고 지적하는 걸 들었다. 탁월한 지적이다. 자신의 스타일에 관한 기본적인 아이덴티티조차 구축못한 남자들에게서 무슨 개성과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까.

물론 이런 결론 모두를 남자들 탓만으로 돌리는 건 억울한 일이다. 어차피 30대 이상 남자들의 주류 패션 아이템인 양복은 서양의 산물이다. 동양 사람들과 궁합을 맞추기 위해선 수많은 번역과 시행착오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상황에서도 양복과 관련해 가장 탁월한 해석력과 적응력을 보여준 게 바로 일본 남자들이다. 기회가 된다면, 도쿄의 쇼핑가 오모테산도를 찾아가 보라.

멋 부리는 것에 관한 한 가장 모험적이고 창의적인 20대들이 아닌, 진부하고 답답한 ‘아저씨 룩’으로 각인된 30대 이상 남자들의 이미지를 단박에 고쳐줄 사례가 널린 곳이다. 일본에서 활동 중인 사진가 친구가 “뉴욕에서 살 때는 몰랐던 수트의 맛을 일본에 와서 알았다”고 고백할 정도로 일본 남자들의 스타일 감각은 뛰어나다.

그 이유? 단도직입해서 말하면 ‘탐구학습’의 결과는 아니었을까? 일본에는 현재 10여 개 이상의 30~40대 남자들을 위한 패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이 활황세를 타고 있다. 이런, 20대의 전유물인 패션 스타일의 판도 변화는 이미 2000년부터 시작된 현상이다.

일본의 유명 매거진 패션 디렉터인 미스터 시마다가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왜 한국 남자들은 아시안 중에 가장 좋은 조건의 몸을 가지고 있는데도, 스타일링에 적극적이지 못한가?”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열망과 과감함이 개성적인 스타일링의 출발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그에게 ‘거기서 거기’인 30~40대 한국 남자들의 스타일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한쪽 귀로 흘려들어도 무방하지만 괜히 한쪽 가슴이 꿈틀거린다면 지금부터라도 시작해 보라. 그 시작은 남자 패션의 복잡한 룰에 대한 학습이다. 사진 <루엘>


글쓴이 문일완은 국내 최초 30대 남자를 위한 패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루엘 luel』의 편집장으로 남자의 패션과 스타일링 룰에 대한 기사를 연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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