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좌담>정당개혁 어디로 가야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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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자당(民自黨)이 「당의 세계화」를 내세우며 지도체제 문제를포함한 조직.운영의 틀 전반을 바꾸기 위한 작업을 벌이고 있다.정치가 우리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면서도 그 핵심인 정당은 가장 후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 다.그런만큼 여당이 스스로 개혁하겠다고 나선 것은 반가운 현상이며 야당의 경쟁심 발휘도 기대된다.정당의 개혁이 어떤 방향에서,어떻게 이뤄지는게 우리정치의 선진화에 바람직한 것인지 전문가들의 좌담을통해 알아본다.
▲안청시(安淸市.서울대 정치학교수)=정당의 선진화는 이제 우리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데 있어 상당히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정당이 구각(舊殼)을 탈피하지 못하고서는 정치는 물론 국가발전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그런점 에서 집권당인 민자당이 개혁하겠다며 모색하는 것은 환영할만 합니다.
▲신명순(申命淳.연세대 정치학교수)=그동안 돈안쓰는 선거를 위해 통합선거법을 제정하는등 법적인 측면에서의 정치개혁은 어느정도 마무리됐습니다.국회도 운영에 관한 제도를 개선했습니다.그런데 우리정당만은 개혁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 다.민자당이「세계화」를 내세워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우리 정당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될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安교수=정당의 개혁은 우선 국민 대표성 확보라는 정당 본래의 기능부터 회복하는데 중점을 둬야 합니다.정당 내부의 분권화와 민주적인 당원 충원이 시급합니다.세계화.지방화라는 시대적 요구를 충족하고 통일과업을 성취할 수 있는 선진국 가를 만들려면 정당도 이렇게 바뀌지 않으면 안됩니다.
▲申교수=지엽.말단적인 것만 고쳐서는 안되고 본질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얘기죠.그러기 위해선 대통령중심제와 내각책임제하의 정당이 서로 판이하다는 점부터 정확히 인식해야 합니다.그동안 우리가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을 간 과한채 정당제도는 내각제 요소를 채택한 것부터 방향을 잘못 잡은 것입니다. 대통령제에서는 정당이 별로 끼어들 여지가 없어요.그런데 우리는 정당의 역할을 강조하고,또 정당이 뭔가를 할수 있는 것처럼 생각해 온게 오류라는 얘깁니다.대통령제의 대표적인 나라인 미국의 정당은 「선거정당」에 불과합니다.정책개발 기 능은 거의없습니다.대통령후보가 모든 정책을 수립하기 때문이죠.
우리도 여야정당이 지난 한햇동안 정책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잘모르겠습니다.때문에 중앙당을 없애는등 정당형태를 확 바꾸는 본질적 개혁이 필요합니다.
▲손학규(孫鶴圭.민자의원.前서강대교수.정치학전공)=민자당이 모색하고 있는 세계화를 두가지 측면에서 말할 수 있어요.정당의개방화.민주화를 추구하는 한편 경쟁력 강화,즉 효율성도 높이자는 것이죠.그런데 이 두 목표는 서로 상충될 수 도 있는 것입니다. 한국정당은 개발독재시대의 부산물입니다.중앙집권적인 정당은 이때 태어난 것이죠.특히 여당은 행정부에 대해 당우위를 이념으로 삼았습니다.그러나 행정부가 각종 개발정책을 수립.시행하게 되면서 당 이념과 현실의 괴리가 생겼습니다.
당이 실제로는 행정부 밑에 있게 된거죠.그런데도 당은 말로는당우위,중앙집권체제를 그대로 유지해왔습니다.따라서 당을 세계화한다고 했을 때 우선 개방화와 권력의 분산을 통해 정치 활성화를 이루지 않으면 안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安교수=보완적인 얘기가 되겠지만 우리정당은 개발독재시대의 형태를 탈피하지 못한 나머지 아직도 조직이 상당히 비대합니다.
내용면에서는 「간부정당」적 측면이 강하면서 당의 체제는 대중정당의 체제를 모방했지요.
이제는 지방화시대에 걸맞은 체제를 갖춰야 할 때가 됐습니다.
그래야만 당의 경쟁력도 강화됩니다.
▲申교수=민자당 개혁작업이 못마땅한 측면도 있습니다.정당 이름을 바꾸는 것부터가 그렇습니다.개혁을 위해 바꿔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면 개혁방향을 가장 잘 알고 있을 당사자들이 새이름을 만들면 되지 공모는 왜 합니까.
개혁 명분을 내세워 3당합당의 유물을 청산하고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정리하겠다는 목적이 더 우선시되는 것같아 달갑지 않습니다.그게 핵심이라면 정치발전과는 크나큰 거리가 있습니다.
정치책략은 좋지 않습니다.
▲安교수=그렇습니다.당 조직.운영.사고방식등 전반적인 개편을뒤로하고 마치 주도권을 다투는 인상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개혁은 정당의 하부구조를 고치는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양질(良質)의 당원을 충원.양성해야 한다는 얘 깁니다.권력만을 추종하는 정치꾼 위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孫의원=한국정당의 개혁을 논하는데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현실과 이상간의 괴리를 잘 파악해야 한다는 점입니다.申교수는 대통령제 아래서 정당의 이념.정책기능이 얼마나 중요하겠느냐고 했지만 그렇지 않은 면도 있습니다.
민자당의 세계화 추진에 있어 일차적 목표는 생산적인 정치를 구현하자는 것입니다.이를 위해서는 정책과 이념을 잘 다듬을 필요성이 있습니다.
또한 권위주의에서 민주화로의 이행기에 이뤄진 3당합당 체제를청산하고 세계화에 맞는 체질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정당은 제도보다는 리더십에 의해 운영되고 있죠.당 개혁이사람의 진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당의 혼재된 이념.정책을 민주시대에 맞게 단일화하는 과정에서 인적 구성의 변화를 수반하는 것도 불가 피한 것 아닐까요. ▲申교수=민자당 사정은 이해가 갑니다.그렇지만 차제에 우리정당의 근본적인 문제를 고치는게 더 중요합니다.거대한 중앙당.지구당 조직을 운영하는데 엄청난 돈이 들고 그런 정당제도가한국정치의 발전을 저해해온 것은 누구도 부인할수 없을 것입니다. 권위주의 시절의 일사불란한 정당조직은 더이상 소용없습니다.
거대한 중앙당이 모든 문제의 근원입니다.중앙당을 해체하든지,존속시키더라도 지구당을 통제.관리하는게 아니라 지원하는 정도에 그쳐야 합니다.정책정당을 추구한다며 행정부보다 훨씬 못한 중앙당 정책위원회를 강화하는 것보다 정책연구소를 두는게 차라리 나을 겁니다.앞으로는 지구당이 중심이 돼야 합니다.
▲孫의원=이익집단 중심의 정치제도를 갖고 있는 미국의 정당제도를 평면적으로 도입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미국은 지역적 요구를 로비와 타협으로 해결하는 전통을 갖고 있는 반면 후발국인 우리는 효율성을 위해 중앙집권적 정치제도를 채택했 습니다.
정당이 단순히 선거를 치르기 위한 조직에 불과하고서는 대의정치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습니다.정당 외곽에 연구소를 두는 것가지고는 부족합니다.정당 색깔을 이념과 정책을 통해 부각시키고그것을 바탕으로 정권을 잡을 수도 있음을 무시 해서는 안됩니다. ▲安교수=우리나라 정당들은 중앙당이 너무 관료화돼 있습니다.중앙당은 선거때가 아닌 평상시에는 기획.연구.조정기능에 보다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통제기능대신 각 지방과 지구당의 의견을 수렴하고 전달.조정하는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죠.
▲孫의원=중앙당이 비대하다고 하지만 중앙당이 수행하는 기능을전면적으로 없애는게 바람직할 지는 생각해봐야 합니다.원내기능은물론 지금보다 더 강화돼야 한다고 봅니다.여당 입장에선 당정협의라는 정책기능도 정부관료조직과 당의 정책이 종종 대립되는 현실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더 많습니다.다만 사무처 조직을 축소해야 한다는데는 동감입니다.
▲申교수=경선문제도 짚어보죠.그동안 야당에서야 해오던 것이고여당도 경선으로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는 마당에 아예 지구당위원장도 경선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이것이 이뤄지면 정치풍토가 완전히 바뀌는 결과를 가져옵니다.아직 여건이 안돼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실천해야 하는 과제가 아닙니까.
▲安교수=정당의 개혁이라는 문제가 집권여당인 민자당에서 먼저나왔다는 점도 재미있습니다.야당을 앞서 가는 것이지요.
그런만큼 당 체질 개선의 과정이 좀더 투명하게 전개돼야 한다고 봅니다.
▲孫의원=실질적 의미의 경선은 어렵다고 봅니다.30년간의 권위주의를 청산하기 위해 발빠르고 효과적인 개혁이 급선무인 상태에서 완전경선은 아직 시기상조입니다.영국의 노동당은 70년대에후보 경선을 도입했다가 국민의 의사와는 거리가 멀고 지구당에만열성적으로 참여하는 후보가 선출되는 바람에 정작 선거에선 판판이 패배했습니다.정당의 정체성과 통합성을 감안할때 경선을 무제한으로 도입하는 것은 부작용이 너무 심하다고 봅니다.
***경선제 걸림돌 많아 ▲安교수=孫의원 말씀대로 경선을 통한 후보 선출은 문제가 많은게 사실입니다.한국정치의 최대과제가엘리트의 충원에 있다고 볼때 당 외부에서 수혈할 필요가 생길 경우 경선제는 현실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그러나 장기적으로 정치권 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경선 도입은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孫의원=후보경선이라는 기본원칙에는 동의하지만 당면과제는 정당의 후보선출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국민들을 직접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느냐는 점입니다.즉 제도적으로 다수의 의견이 수렴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당면 한 정당 체질개혁의 급선무입니다.
▲申교수=정당의 민주화중 또하나 간과할수 없는게 권력의 분산기능 확보입니다.이 점에서 중요한 것은 시.도지부를 강화해선 안된다는 점입니다.경쟁력 확보나 당의 민주화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죠.정당의 시.도지부가 강화되면 지 역간 골과 지역당적 성격이 더욱 강해질 수 있습니다.지역보스 중심으로 파벌이 형성될 수도 있고 이들간의 합종연횡으로 의사가 결정될 위험성도 큽니다.
▲安교수=결국 정당 개혁은 당장 현실을 뛰어넘기보다는 한국정치의 정당 현실을 인정하면서 긴 안목을 갖고 추진해야 합니다.
정당의 후진성이 선진국 진입의 걸림돌이 된다는 시각을 불식하기위해서라도 이 작업은 매우 시급합니다.여야할 것 없이 건전한 정치세력이 배양되고 엘리트 충원과 민주주의 풍토를 세우기 위한내부 개혁에 나서야 합니다.비록 한국정치라는 특수성 속에 여당이 먼저 손을 댔지만 앞으로 여야간 경쟁과 당내 경쟁을 통해 세계화의 내적 기틀을 정당구조에서도 갖춰야 합니다.
[정리=李相逸.朴承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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