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과문화

엉뚱함에 대한 옹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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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뿐이랴. 중견시인 이문재는 대학 시절에 친구 류시화와 함께 수업시간에 벌떡 일어나 노래를 불렀다. 막걸리에 도시락의 찬밥을 말아 먹었다. 오른손잡이임에도 글씨를 일부러 왼손으로 썼고, 담뱃갑을 거꾸로 뜯었다. 그는 “고정관념과 선입견, 관습과 제도를 뛰어넘는 파천황이 절실했다”고 당당하게 고백한다.

 일부는 이미 ‘전설’의 반열에 올랐고, 일부는 아직 ‘민담’ 수준에 머물고 있는 일화들이다. 입에 말 올리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두고두고 심심풀이 땅콩 삼기도 한다. 엉뚱하긴 하지만 썩 재미있으니까!

 그러나 일상적인 시각으로 보면 다들 파렴치하고 미친 짓들이다. 학문과 문학을 앞세워 기행(奇行)을 일삼은 것일 뿐이라고, 허세와 위악과 치기와 낭만의 산물이라고 깎아내릴 수도 있다. 관습으로 굳어지고 제도화된 일상은 규범적 질서에서 벗어나는 일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그다지 옳지 않은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정말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 만약에 태양에 플러그를 꽂으려는 어떤 아이가 있다고 치자. 그 아이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교실에서 추방되고 말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일상을 벗어난 사고와 행동에 대해 대체로 너그럽지 못하다. 우리는 대부분 반듯하고 착한 아이 키우는 걸 교육이라고 믿는다. 국가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아이들을 그쪽으로 데리고 간다. 안타깝게도 모두들 완전무장하고 행군하는 군인 같다. 엉뚱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는 아이가 설 자리는 별로 없어 보인다. 바다 속을 사다리 타고 내려가 보고 싶어 하는 아이가 있다면? 달을 따 오겠다고 포충망을 들고 길을 떠나는 아이가 있다면? 콩나물을 땅에 심어 목재로 쓰겠다는 아이가 있다면? 어른들의 한심한 상상력은 아이들의 엉뚱함을 따라갈 수 없어 난감해지고 말 것이다.

 흔히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이런 구호에 현혹되어 오로지 자본의 투자에 비례해 문화가 발전한다고 믿고 있는 자들이 생겨날까 걱정된다. 그들은 작금의 한국 영화가 주춤거리고, 문학이 위기를 맞고 있는 것도 다 투자가 부족한 탓이라고 앙앙거리고 싶을 것이다. 문화는 자본이 아니라 엉뚱한 상상력을 먹고 자라는 식물이다. 지난 연말,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각종 시상식 때문에 그만 질리고 말았다. 상 받으러 텔레비전에 등장한 연예인들의 천편일률적인 수상소감을 듣다 보니 또 화가 났다. 끝도 없는 나열과 반복의 상투적인 인사치레 앞에 점잖게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감자를 몇 방이라도 먹여 주고 싶었다.

 문화, 혹은 예술이라는 말 부근에서 밥 벌어먹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정신 바짝 차리자. 새로운 문화는 엉뚱한 생각 속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자. 엉뚱함은 문화의 아버지요, 창의성의 시발점이라고 생각하자. 창의성은 상상력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자. 상상력이 딱딱해지면 세상이 지긋지긋해지는 법이다. 살맛 나는 세상을 위해서도 엉뚱함은 충분히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 일상에서 이탈한 상상력이 세상을 이끌고 간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