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드에서>KBO총재 야구인이 뽑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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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1919년 월드시리즈에서 시카고 화이트 삭스는 상대인 신시내티 레즈를 맞아 치사한 져주기게임을 벌임으로써 「블랙 삭스」란별명을 얻게 되었다.에이스인 에디 치코트등 8명의 주전선수가 승부도박사들의 꾀임에 빠졌던 것이다.
이 사건이후 1920년11월12일 구단주들은 연방법원판사이던킨쇼우 M 랜디스를 초대 커미셔너로 모셔왔다.랜디스판사는 스탠퍼드석유회사에 무려 2천9백만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함으로써 전 미국을 깜짝놀라게 했던 강직한 인물이었다.
연봉 5천달러의 연방법원판사는 커미셔너가 됨으로써 연봉 5만달러를 받게 됐고 동시에 야구의 전권이 쥐어졌다.현재 미국.일본.한국에서 통용되고 있는 야구규약은 랜디스판사가 만든 골격을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야구의 구세주」혹은 「야구의 황제」로 불리던 랜디스 커미셔너는 1944년11월25일 작고함으로써 24년에 걸친 종신임기를 끝냈다.이후 구단주들은 상원의원,원로야구기자.변호사.LA올림픽조직위원장.프린스턴대학총장등을 커미셔너로 선임 했으나 단 한번도 대통령의 지명이나 기타 외부로부터의 압력으로 커미셔너를선임한 일은 없었다.
커미셔너 선임은 5~8명으로 구성된 선임위원회가 충분한 검증을 거쳐 후보를 선발하고 그뒤 구단주 총회의 의결을 거친다.
우리나라의 경우 초대 커미셔너는 4명의 후보를 청와대에 제출,당시 대통령이던 전두환씨가 軍선배인 서종철씨를 낙점함으로써 이루어졌다.이후 국회의원.장성출신등이 역시 낙하산 인사로 내려왔다.짧은 임기를 가졌던 오명(吳明)씨 한사람만이 구단주들의 추천으로(그것도 위의 눈치를 보아가며)커미셔너가 된 케이스다.
임기 3년의 커미셔너 자리에 최근 2년반동안 무려 3명이나 스쳐갔다.지금은 또 공석이다.
첫 단추가 잘못 채워져서 그런지「야구의 황제」자리가 공석이어도 구단주중 어느 한 사람도 새 커미셔너 모셔오기에 나서는 사람이 없다.그저 복지부동하며「이번엔 또 누가 낙하산으로 내려올까」눈치만 보고있을 뿐이다.
한국야구위원회 정관 제11조〈임원의 선출〉조항을 보면「총재는총회에서 재적회원 3분의2이상의 찬성으로 선출한다」고 분명히 밝혀져 있다.다만 사단법인인 관계로「선출한후 감독청의 승인을 얻어 취임한다」고 되어있을 뿐이다.그러나 지금까 지의 관행은「감독청에서 내려온 쪽지를 총회는 만장일치」로 추인(追認)할 뿐」이었다.
문민시대에 더구나 6월이면 지방자치단체장도 선거하는 마당에 이 잘못된 관행을 또 거듭할 것인가.구단주들의 깊은 반성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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