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사후의북한을가다>9.중국같이 썩는 개혁 안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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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주민들은 통일염원을 뜻밖의 방법으로 연결해 생각하고 있었다. 대화와 화해.개방,그 어느것도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북한당국이 대외에 밝히고 있는 것과는 달리,평양사람들이나 지방사람들이나 또한 총을 든 군인들도 마찬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노래를 부르며『기자선생님! 돌아가시면 통일을 위해 열심히 싸워주십시오』라고 울부짖던 88년.90년도방북때,어린이의 이같은 절규를 들으며 함께 울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그들이 말하는 통일은 기자가 생각했던 그런 민족의 화합차원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이번 3,4차 방북에서야 알게됐다. 『우리 가난하고 못삽니다.사실입니다.너무 장기간 흉년에 시달렸고 그리고 누구하나 우리를 도와줄 사람 어디 있습니까.「자력갱생」을 부르짖을 뿐입니다.그러나 지저분한 부자보다 깨끗하게가난한 것이 낫지 않습니까.』 평양의 책임있는 관리의 말이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강조했다.
『중국을 한번 보기요.썩어가지 않습니까.그런 개혁 우리는 안합니다.개혁은 균입니다.사상도 리념도 갉아 먹는 균입니다.
우리는 남조선 상황을 잘 알고 있습니다.핵위기때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께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말씀 한마디에 많이 가진자는해외로 뛸 생각하고 조금 가진자들은 라면 사들이고 곤로 구입하기에 바빴습니다.그리고 못가진자들은 빨리 전쟁났 으면 좋겠다는분위기 아니었습니까.』 조국해방전쟁(6.25)때 총 한방 안쏘고도 서울을 해방시켰다는 그는 줄곧 자신들이 비록 가난하지만 우위에 있어 고려연방제로 평화적인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표출하고 있었다.
『우리가 왜 지금까지 못먹고 이 고생하고 있습니까.미국놈이 계속 우리를 먹으려고 한다니까 허리띠를 졸라 매지 않았습니까.
준전시 선포됐을 때 기회는 왔다고 기뻐했습니다(40대.지방남성).』 『이제 더이상 못참겠습니다.전쟁이나 났으면 좋겠습니다(50대.농촌남성).』 『우리가 배고픔을 견뎌낸 보람이 있어 미국놈들도 쩔쩔매는 무기를 갖지 않았습니까.한방이면 끝장납니다.
아!그때가 인차(빨리)왔으면…(40대.평양군인).』 『95년이면 꼭 붙게됩니다.우리는 겁내지 않고 오히려 기다리고 있습니다.8~9년씩 군대에서 괜히 복무했겠습니까(30대.제대군인).』북한주민들은 김일성이 임종할 때『통일 못시키고 간다』라고 말했으며 김정일이『걱정마십시오.제가 곧 치갔습니다』라고 말했다고 알고 있었다.
어디에서 나온 말인지 많은 사람들 입에서 꼭 같은 말을 들을수 있었다.「핵」이란 표현은 쓰지 않았지만『한방이면 세계가 간다(멸망)』는 말을 그들은 자주 썼다.
남조선 경제 대단하다더라는 말도 했다.
『남조선 경제력을 미국과 중국이 업고 들어와 야금야금 잠식하는 것을 우려한다』고도 했다.
대학출신인 고등중학교 교사와 통일문제를 장시간 나눌 수 있었다. 일반 주민들 처럼 전쟁우위론을 주장하지 않았던 그는 배운사람 답게 차분히 남과 북을 평가하고 있었다.
『우리가 이제 곧 죽게 됐으니 결단을 내릴 때가 왔습니다.
남조선과 미국의 경제침략으로 10년내 북과 남이 합할 가능성이 큽니다.그러나 독일처럼 흡수통일은 우리인민 모두가 겁을 내고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는 상당히 차분히,마음속에 묻어둔 생각들을 정리하는 듯 했다.
물론 상대가 중국교포라는 안도감에서 일 것이다.
『우리인민들이 경제를 모르고 세계를 모르고「우리식」사상만 듣고 배워,독일처럼 흡수통일 된다면 지금의 배고픈 생활보다 정신적인 가난을 더 견디지 못할 것 아닙니까.』 그는 남쪽의「인간성 상실」을 주장하며 비록 경제는 발전했더라도 가진자들이 못가진자들을 천시하고 학대하는 사회로 규정했다.
『우리,지존파도 다 알고 있습니다.온보현이도….우리 인민들이그들처럼 몰리게 될 것을 겁내고 있습니다.전쟁에 대처하기 위해지금까지 배고프게 살아왔는데 남조선 가진자들의 노예가 된다면 차라리 이대로 죽는게 낫지 안갔습니까.』 북한주민들의「한번 붙었으면」하는 통일방식은 북한당국이 세포조직을 통해 세뇌시킨 결과라는 사실을 그 교원(교사)을 통해 알수 있었다.
『중국을 다녀온 동무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강건너면 별세상이다.미국놈들과 남조선괴뢰 그 자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경제가 무섭더라.사회주의의 우월성이 한시에 무너진 리유(이유)를 이제 알갔더라」고 내게 말했습니다.』 그 교원은 심각한 얼굴로한숨을 계속 쉬었다.
평소 동료들과 통일문제를 많이 토론한 듯 보였다.
죽을 때 죽더라도 한번 싸워보고 끝장내겠다는 북한주민들의 통일방식주장은 사기충천한 그런 모습이 아니라 절규요,한탄의 목소리로 들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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