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비층 ‘수퍼 대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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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이인상(38)씨는 토요일마다 여섯 살 난 딸아이와 수영장에 간다. 아빠와 함께 물놀이를 하면 친밀감도 커지고, 정서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3개월 전에 시작했다. 그는 두 달에 한 번씩 유치원 일일 교사로도 활동한다. 이씨는 “아내도 직장이 있어 내가 육아 문제에 신경을 많이 쓴다”며 “유치원 학부모회에 가도 절반은 아빠들이어서 별로 어색하지 않다”고 말했다.

GS홈쇼핑은 남성 시청률이 높은 토요일 오전과 일요일 오후에 생활 가전 프로그램을 집중 편성하고 있다. 스팀청소기·다리미 등을 사는 소비자 중 남성 비율이 10%대이고, 식기세척기·음식물쓰레기 처리기의 경우 20%가 넘었기 때문이다. 권재우 주방용품 MD는 “가사 분담을 하는 남편들이 식기세척기 등 가사를 편리하게 해 주는 기계를 많이 산다”고 설명했다.

최근 유통가에선 ‘수퍼대디(Super Daddy·완벽한 아빠)’를 새로운 소비계층으로 꼽는다. 이는 가사·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를 가리키는 말로 직장일·가사·육아를 완벽하게 해내는 엄마 ‘수퍼맘’에 빗댄 말이다.

맞벌이 부부가 늘고 가장의 이미지가 권위적인 모습에서 친근한 모습으로 바뀌며 수퍼대디는 점점 늘고 있다는 것. 이에 유통·소비재 업체들과 교육업계가 발 빠르게 ‘수퍼 대디’ 마케팅에 나섰다.

가장 활발한 곳은 생활가전 업계다. 린나이코리아는 지난해 가을부터 중견 남성 탤런트 주현씨를 광고 모델로 음식물쓰레기 처리기 광고를 내보냈다. 이 회사 홍보팀 나세영 대리는 “남성 소비자들이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음식물쓰레기 처리기 업체 루펜리도 올해 남성 모델을 기용할 계획이다. 동양매직은 지난해 전기오븐을 출시하며 남성들을 대상으로 요리 사연을 접수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전략사업팀 최창섭씨는 “기계를 좋아하는 남성들이 오븐을 쓰기 편한 가전으로 생각하면서 오븐을 사는 데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수퍼대디는 유통업체 문화센터 풍속도도 바꿨다. 현대백화점 미아점(서울 미아동)은 최근 자녀 교육 강좌를 대폭 개편했다. 기존에는 엄마 참여형 강좌가 주류였지만 이를 줄이고 ‘아빠와 함께 로봇 조립하기’ ‘아빠와 함께하는 케이크 만들기’ 등 아빠와 함께하는 강좌를 4개 신설했다. 이정득 판매기획팀장은 “엄마 대신 아이를 데려오는 젊은 아빠가 계속 늘어 아빠 참여형 수업을 늘렸다”고 말했다.

교육업계도 아빠 모시기에 나섰다. 2005년부터 ‘아빠의 대화 혁명’ ‘아빠의 놀이 혁명’ 등의 시리즈물을 펴낸 웅진씽크빅은 최근 아버지들을 대상으로 육아 강좌를 열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매번 참석하는 아빠들이 젊어지고, 수업이 끝난 뒤엔 엄마들보다 더 열심히 질문한다”고 말했다. 한국가정경영연구소 강학중 소장은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질수록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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