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과주말을] 내숭 없는 사랑이 아름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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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연애잔혹사
고윤희 지음, M&K, 328쪽, 1만원
 
21세기 연애코드를 해부했다는 책이다. 동거, 섹스, 낙태, 피임, 원 나잇 스탠드, 바람, 자위, 가부장제와 1부1처제의 허점, 마초본색, 처녀본능 등 현실에서는 한창 진행 중인 시대적 고민이지만 드러내놓고 말하기 껄끄러웠던 주제들을 용감하게 파헤쳤다. 저자는 영화 ‘연애의 목적’의 작가 고윤희. 연애-사랑-섹스-결혼의 사각지대를 헤매는 싱글남녀 1000명을 인터뷰해 살아있는 사례를 담았단다.

책은 사랑을 무작정 아름답고 순수하게 그리는 ‘내숭’을 걷어냈다. 사랑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또 얼마나 잔혹한지 알면서도 사랑에 올인 한다면 그게 진짜 사랑이 아니겠냐는 외침이다. 술자리 수다판에서나 어울릴 법한 적나라한 이야기들도 과감하게 활자화시켰다.

대학 때부터 명품만 걸쳤던 M. 기어이 고위층으로 시집을 갔다는 저자의 친구 M이 했다는 충고는 이렇다. “넌 의상이나 스타일이 문제야. 보세는 딱 보세 같은 남자만 불러 모아. 그리고 제발 ‘은(銀)’ 좀 하지 마. 그거 보면 남자들이 니 수준을 딱 은으로 본다고.” ‘검소한 사람이 실연당한다’는 장(章)에서 다룬 내용이다.

연애의 속성도 재미있게 꼬집어내 현실적인 조언을 전한다. ‘방귀 시인식’ 을 권하는 대목에선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게다. 섹스에 문란한 여자를 이해하는 남자는 봤어도 방귀에 개방적인 여자를 용서하는 남자는 아직까지 못 만나봤단다. 그러니 여자들이 연인 앞에서 방귀를 꾹 참는 게 연애의 상도. 하지만 연인 사이에 방귀를 튼다는 건 그만큼 관계를 심화시켰다는 증거이기도 한데, 어느 커플에게나 그 첫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연인이 실수로 방귀를 뀌었을 때 민망해할까 배려한다며 모른 척 하는 건 금물다. “어? 너 방귀 뀌었냐. 하하하”라고 그 자리에서 ‘방귀 시인식’을 해주면, 그 뒤로는 서로 자연스레 방귀를 트게 되고 둘 사이는 더욱 친밀해진다는 것이다.

연애와 결혼의 차이점에 대한 분석도 그럴듯하다. 연애는 ‘행복만을 추구할 권리’를 강조하는 데 반해, 결혼에서는 ‘행복해야 하는 의무’가 더 강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애든 결혼이든 다 어찌어찌 하면 ‘행복’과 연결된다는 얘기니 왠지 솔깃해지지 않는가. 사랑하기엔 팍팍한 현실이지만 한번 용기를 내보면 어떨지.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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