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일본 예산철 관가 진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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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본에서는 연말예산주간을 앞두고 큰 즐거움이 남겨져 있다.
수백명의 일본 엘리트관리들은 매년 예산을 짤 때마다 그렇듯이한주일 내내 계속되는 일중독증 환자들의 밤샘파티에 돌입할 채비(일본에서는 이를 파자마파티라 부른다)를 하고 있는 것이다.도쿄(東京)의사당 주변의 관청가에는 예산담당관리들 이 사무실 바닥에 매트리스를 쌓아놓았다.
한편에는 돼지고기스튜와 생선회그릇.맥주병등이 사무실의 컴퓨터를 가릴 정도로 쌓여있다.이들 다과류는 대부분 한푼이라도 예산을 더 따려는 지방자치단체와 산업계로부터 들어온 선물들이다.
국왕탄생일(휴일)인데도 관리들은 쉴 틈이 없다.이날도 많은 관리들이 또다시 밤샘 준비를 했다.고된 시련의 예산편성이 각의통과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예산협상이라는 연례행사의결과는 이미 예정돼 있다.대장성은 이미 내년 예 산지출 증가율을 3.1%로 잡아놓고 부처별 예산도 지난 30년간의 점유비율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천명했다.
그러면 뻔한 예산을 가지고 이처럼 협상이다 뭐다 해서 흥청거리는 이유는 뭘까.한마디로 예산협의는 관료조직의 성찬식이기 때문이다.예산주간을 통해 일본 관리들은 일터에서의 우의를 다지고집단의식을 고취한다.또 철야작업은 스스로 열심히 일한다는 의식을 확인시켜준다.
『사람들은 일의 결과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야근을 했느냐에 따라 평가한다』고 후생성의 미야모토 마사오는 푸념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예산작업은 대학생들의 동호회 파티만큼이나 신나는 일이다.
건설성에서는 관리들과 업자들이 종이컵과 빈 위스키병을 늘어놓은 채 잡담을 나눈다.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쪽 구석에선 코를 골며 자는 사람도 있다.도로국의 사무실 밖에는 구석에 담요가 쌓여있고 쓰레기통에는 이 미 빈 술병이 가득하다.그러나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다.홀 아래쪽 「출입금지」라고 쓰인 문 안쪽에 진짜 예산작업이 벌어지는 내부 작업실이 있다.접이의자와 복사기.컴퓨터가 달린 창문없는 비좁은 방에서 창백한 얼굴의 젊은이 3명이 도 로국 예산을 수없이 고쳐 짜고 있었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기는 더욱 어렵다.어떤 관리는 간이침대나 슬리핑백에서 쓰러져 자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의자 두개를 펼쳐놓고 자는 걸 선호한다.
다행스럽게도 최근에는 이같은 낡은 예산주간의 전통은 점차 없어지고 있다.
특히 컴퓨터의 보급에 따라 밤샘작업의 빈도는 크게 줄어들었다.그러나 산하기관으로부터의 음식배달에 대한 기대는 여전한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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