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을 말한다] '검은 소설이 보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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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한 소설가 김종호(34.사진)씨의 첫번째 소설집 '검은 소설이 보내다'를 읽는 일은 고통스럽다. 책장을 덮고 싶은 충동이 일 만큼 쉽게 읽히지 않는다.

70쪽 가까운 중편인 표제작 '검은 소설이 보내다'에서 사건의 진행이라고 할 만한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소설 초반 "지금 시간은…, 그러니까…, 지금 시간은…, 자정에서 조금 넘은…" 같이 힘겨운 독백처럼 처리된 부분을 통해 비내리는 새벽 집을 나선 '네'가 미끄러진 자동차에 치여 처참하게 숨진 후 너의 유골을 가족들이 지리산 자락에 뿌렸다는 정도가 조합해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이야기다.

소설은 오히려 곳곳에서 전통적인 형식을 거부한다는 점을 밝힌다. 소설의 화자 '나'는 꿈에서 본 검은 소설이 기억에 없는 작품이라고 하는가 하면, 소설의 틀을 해체하는 것은 작가의 실험적인 의지 때문도, 시류에 영합하기 위한 교활한 것도 아니고 작중 인물은 물론 작가까지 봉인에서 해제하는 것이라고 밝힌다.

한편 천연덕스럽게 '이 책 읽기 어렵지 않으냐'고 물어보는 각주는 온전히 한쪽을 넘어가기도 하고, '여기 어둠이 깊고…,'라는 구절로 끝나는 1백84쪽 오른쪽 1백85쪽은 온통 까맣게, 달랑 '여기 안개만 짙고…,' 한구절만 인쇄해 넣은 1백86쪽 오른쪽 1백87쪽은 살짝 명암을 넣어 안개처럼 보이도록 인쇄했다.

의도적인 소설 형식의 거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김씨는 후기에서 "소설을 소설이게 하는 조건들을 부정함으로써 소설이라는 비밀의 형식을 드러내려 했다"고 밝혔다. 평론가 김진수씨는 "김씨 소설이 서사 형식의 파괴와 문법적 해체를 통해 소설의 전통적 주체를 없앤 탈존의 미학을 드러낸다"고 평했다.

김씨는 왜 소설 형식 자체를 문제삼는 걸까. 김씨는 "언제부턴가 '소설은 서사'라는 개념에 반감을 갖게 됐다. 소설의 형식은 고정돼 있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내 소설에서 이야기를 찾으려 하지 말고 문체라든가, 이미지 등을 감상해달라"고 주문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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