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 밑의 유혹과 아늑함 … 여성을, 엄마를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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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치마 밑의 유혹과 아늑함, 어머니의 유품, 자궁의 기억, 외할머니의 임종, 자신의 머리카락….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어머니와 딸’전은 여성주의 미술의 감성과 힘을 보여주는 전시다. 일본의 유명 작가 두 명, 한국의 젊은 작가 세 명이 참여해 다양한 시각과 매체를 통해 여성으로서의 자아와 어머니의 이미지를 풀어냈다. 진휘연 삼성디자인학교(SADI)교수가 기획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했다.

센터 2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초대형 드레스를 입고 높은 의자에 앉은 여성 모델이 눈길을 끌어당긴다. 반경 6m에 이르는 새빨간 드레스 자락이 바닥을 덮고 있다. 예술 댄스와 퍼포먼스로 이름 높은 일본 작가 수나야마 노리코(44)의 ‘숨막히는 세상’(사진)이다. 관객은 여기서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된다. 드레스 자락을 들추고 치마밑으로 들어가는게 시작이다. 중앙으로 들어가면 높은 의자에 앉은 모델의 하체가 보인다. 바닥에는 손전등 5개와 노트 세 권이 놓여있다. 남성에게 이 분위기는 관음적이다. 손전등으로 모델의 속옷차림 아랫도리를 비춰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분위기도 있다. 유아 시절 어머니의 치마폭 기억같은 것 말이다. 바닥의 노트에는 앞선 관객들의 느낌들이 적혀있다. “좀 변태스런 느낌이네요” “어린 시절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떠올라요. 작가도 그랬던 것 아닐까요. 치마속에서 그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이에요” “따스하고 편안해요.”

전시를 기획한 진교수는 “이 작품은 일차적으로는 여성에 가해지는 성폭력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동시에 여성만이 갖는 아름다움과 치명적인 유혹을 보여주면서 어머니의 치마 밑에서 경험했던 유아기의 기억까지 끄집어 내주는 다중적 의미체로서 작용한다”고 말했다.

전시장 왼쪽 벽에는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을 단독으로 장식했던 사진작가 이시우치 미야코(60)의 ‘어머니의 것’ 연작이 붙어있다. 화상으로 얼룩진 가슴 사진도 있고 립스틱과 속옷, 구두 등의 유품을 촬영한 것도 있다. 관객은 여기서 한 개인의 추억이 아니라 어머니 일반의 보편적인 기념물을 보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한국 작가들은 좀 더 다양한 실험성을 보여준다. 서효정(35)이 꾸민 작은 방 ‘기억공유장치로서의 자궁’을 보자. 입구에서 카메라가 관객의 얼굴을 촬영한다. 방 바닥에는 사람들의 얼굴이 돌아가며 비치고 있고 센서에 손을 대면 화면에 자신의 얼굴도 등장한다. 태아 시절에 세상에 대해 가졌을 느낌을 구체화한 작품이다.

정소연(40)은 TV모니터 들을 이용한 설치작품 ‘아날로그 복제에의한 이미지 변조: 숨’을 내놨다. 외할머니의 임종 직전 모습을 촬영한 비디오를 수백번 복사한 결과를 보여준다. 화면은 점점 노이즈가 늘어나면서 마침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삶의 종말이란 내용과 이미지의 소멸이란 형식을 일치시키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함연주(36)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매끄러운 원판에 붙인 ‘자화상’ 연작을 내놨다. 거울속에서 자라나온듯한 머리칼은 여성의 끈질긴 삶과 매력, 어머니와 딸간의 혈연적 유대를 함께 상징한다.

진휘연 교수는 “한국 작가들은 다양함 매체를 이용한 실험성이 돋보이는 반면 일본의 두 작가는 동양의 여성이 갖는 엄마와의 관계, 사회에서 남성들에게 느끼는 폭력성 등을 섬세하게 표현한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2008년 1월 13일까지 계속된다. 02-733-8945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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