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중소기업 자금난 심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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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회사일은 뒷전이고 한푼이라도 건지기위해 부도난 거래업체를 찾아다니는 것이 하루 일과가 됐습니다.』 서울구로구구로동에서 부품업체를 경영하는 P기업 朴모(39)사장.그는 오전8시에 출근하면 간단한 업무처리 지시만 하고 거의 하루종일 거 래대금 일부라도 챙기기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하다보니 기술개발.생산성향상등 본래의 업무는 챙길 겨를이 없다.
朴사장은 지난 10월께부터 자금사정이 급작스레 나빠지는 것을실감하고 있다.
최근 3개월내 50여개의 거래업체중 직접 부도를 내거나 물품대금으로 받은 어음이 부도가 난 경우가 약 20개업체에 이르고있다는 것이다.
연간 10억원대였던 매출이 올들어 5억원대로 위축되면서 그나마 거래기업의 부도사태로 수금마저 원활치 못해 이중고(二重苦)를 겪고있다.12월은 보너스지급과 자재대 결제,각종 경비지출등으로 자금수요가 30%이상 늘어나는데 수금은 턱없 이 부족해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른다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결국 외부에서 돈을 꾸어와야 되는데 은행은 담보다,보증인이다,기타 번거로운 절차등을 요구해 거래가 끊긴지 오래 됐고 상반기만 해도 월3부에 조달하던 사채도 최근에는 구할 수 없게 됐다. 朴사장이 겪는 이같은 자금난은 호황을 누리는 일부 대기업,그리고 이들과 계열관계를 맺고있는 기업이나,수출에 주력하는 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어려움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올들어 부도가 급증하는 것은▲신규주택 건설이 주춤해졌고 지어놓은 집들도 분양이 안되는등 건축관련 경기가 위축된데다▲은행이통화량의 수위를 조절하기위해 할인한도를 점차 축소한 점▲어음거래등에 비해 벌칙조항이 약한 가계수표 남발로 신 용질서가 흔들린 점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건축관련 업종뿐만 아니라 대부분 중소업종들은 올들어 각종 보호막이 제거되고 대기업과의 경쟁등으로 체질이 약해진데다 경기부진마저 겹쳐 예년의 자금난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종업원 2백~4백명 규모의 중견기업도 어려움에 몰리기는 마찬가지다.
중견 기계업체인 매출액 1천억원대의 S중공업 P사장은 9월부터 은행의 자금줄이 조이면서 당좌대월 한도가 20억원에서 10억원으로 줄어들게되자 10월들어 단자등 제2금융권으로부터의 자금조달을 크게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외형 2백억원대의 플라스틱포장재 업체인 T화학은 거래은행으로부터 어음한도 축소종용을 받고 있어 상호신용금고나 사채시장에서할인을 늘리는등 비상대책을 세우고 있다.
전자.자동차.조선.중공업등 경기좋은 업종과 거래관계에 있는 중소업체들은 자금사정이 괜찮은 편이나 그밖의 대부분 중소업종은극심한 어려움에 놓여있다는 게 기협중앙회 관계자의 지적이다.
국민은행 서소문지점의 金모차장은 『지난 4월 총액대출한도제 도입에 이은 통화관리 강화에다 은행의 연말지준 확보등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공급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그는 『이제 대기업이 장기.시설자금등은 직접 금융이나 해외기채를 통해 조달하기 때문에 장차 우량 중소기업들이 은행자금을 이용하기는 비교적 쉬울 것이나 소기업은 여전히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럭키금성경제연구소의 김민태(金敏泰)연구위원은 최근의 자금난과관련,『한국통신과 중소기업은행의 증자과정에서 많은 부동자금이 통화시장을 넘나든 현상과 해외자금 유입급증등이 통화관리에 부담을 줬다』고 말했다.그는 『이같은 시중자금사정은 자금수요가 줄어드는 내년초면 어느정도 해소될 것이나 금융자율화의 진전추세에따라 중소기업의 자금난은 갈수록 심화될 전망』이라며 『중소기업은 스스로의 기업체질을 강화하거나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洪源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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