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진출기업 철수 러시 배경.현황과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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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근 업계와 무역진흥공사등을 통해 전해지는 해외 현지법인들의잇딴 폐쇄와 철수 소식은 철저한 사전분석없이 해외에 진출하려는국내 업체들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특히 80년대이후 국내 섬유업체들의 최대 진출지였던 중남미지역에서 한국업체가 줄이어 철수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저임을 최대 메리트로 삼았던 개발도상국 진출 방식을 재고할 때가 왔음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해외진출 국내 기업들이 가장 크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은카리브海연안 국가로 일컬어지는 중남미지역과 인도네시아.중국등 동남아 지역.
업계전문가들이 지적하는 투자실패 요인은 크게 두가지 정도로 압축된다.우선 장기적 투자계획 없이 싼 임금과 지역적인 투자메리트만을 생각하고 성급히 현지투자를 시도한다는 점.
이 경우 투자초기에 쉽사리 과실을 거둘수 있었던 점도 진출업체들의 현실안주를 부추겨 결과적으로 급변하는 현지환경에 적응치못하게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진출국가의 예상치 못한 제도변화와 이에따른 급격한원가상승도 실패의 큰 원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노동법강화.세제급변등 개도국 특유의 법적.제도적 변화는 어찌보면 불가항력인 것으로 앞으로 개도국 투자를 고려하는 업체들은투자결정에 있어 반드시 감안해야 할 사안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카리브海 연안국가=해외진출 업체들의 경영난이 가장 심각하게전해지는 지역은 도미니카.온두라스.과테말라.엘살바도르.코스타리카등 중남미 지역국가들.
한때 3백여개를 헤아렸던 국내기업들의 현지법인은 90년이후 해마다 급격히 줄어 올해 6월말 현재 2백여개로 대폭 줄어든 것으로 무역진흥공사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90년이후 중국.대만등 경쟁국들과 국내 제조업체들이 진출러시를 이루면서 해마다 임금이 폭등세를 거듭하고 있다.과테말라의 경우 특히 지난 10월20일 노동법강화로 최저임금이 무려 37%나 인상돼 한국은 물론 다른 나라 업체들도 인근 멕시코등으로생산기지를 이전하고 있다.
여기에 사회간접자본이 원래 부족한 실정에서 최근 수년간 외국업체들의 투자가 확대되면서 물류비용이 급증하고 있으며 전력사정은 최악에 이르고 있다는 무공(貿公)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한국업체들이 철수를 고려하게 된 결정적 요인은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경기의 장기침체로 최근 수년간 매출이 급감한데 따른 것이다.
게다가 미국.캐나다.멕시코등 북미국가들이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뒤로 그동안 카리브해 연안국가들에 주어진 무관세 특혜가 조만간 대폭 감축 또는 아예 없어질 것이란 예측이 업체들의 철수를 부추기고 있다.
이 때문에 업계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업체들이 생산설비를 장기적 안목으로 멕시코쪽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중국=90년이후 외국기업들의 중국진출이 본격화되면서 급격한임금상승이 진행되고 있다.중국의 경우 카리브해 지역과 달리 명목임금외에 인두세 형식의 각종 부과금이 따르고 있어 진출업체들이 말하는 실제임금은 이미 저임메리트를 상실한 인도네시아등과 맞먹고 있는 실정.
그러나 중국진출 업체들이 가장 곤혹스럽게 느끼고 있는 것은 사회주의국가의 특징인 불투명한 장래성과 돌발적인 제도변화.
중국은 올들어 한국의 부가가치세와 비슷한 증치세를 외국기업들에 부과하는 한편 최저임금제를 도입,근로자들의 노사분규를 의도적으로 조장하고 있다고 현지업체들은 지적하고 있다.
제품판매 대금의 17%에 해당하는 증치세의 경우 아직 외국투자기업들에 대한 중국정부 당국의 환급약속이 불투명한 상태라 국내업체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대한 원산지 증명을 원료의 원산지에서 제품의 최종 가공지로 변경한 것도 국내 업체들의 수출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인도네시아등 동남아국가=인도네시아는 임금.물가등의 상승으로이미 투자메리트를 잃고 있는 국가.급격한 금리상승으로 실세금리가 年 약 18%에 육박,이웃 싱가포르(약 5%)의 3배를 넘고 있어 현지투자법인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
국내업체들이 다퉈 진출하고 있는 베트남의 경우도 하루가 다르게 투자환경이 열악해지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베트남 정부가 외국업체들에 약속한 바와 달리 최근 최저임금법제정으로 노사분규가 잇따르고 있다.국내 진출업체중 충남방적의 현지공장에서 이미 노사분규를 겪었으며 이달초 ㈜방림의 현지법인에서 근로자들이 40%이상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있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동남아국가 진출의 경우 남북경협 활성화와 투자계획을 연계해 판단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투자여건이 최소한 현상태에 머물지 않는다면 중장기적 안목에서 해외투자를 보류하고 대북(對北)투자를 고려해 봐야 할 시점이라는 분석이다.
〈林峯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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