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등급 발표 전 이의제기 … 평가원, 오류 고칠 기회 외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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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출제와 채점을 맡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올해 수능 과학탐구 물리Ⅱ의 11번에 대해 묵살로 일관했다. 평가원은 지난달 28일 이의심사 실무위원회를 열어 이의제기가 있었던 물리Ⅱ의 11번에 대해 "정답에 이상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상기체를 단원자.다원자로 구분해 내부 에너지를 구하는 것은 제7차 교육과정을 벗어난다는 이유였다. 당시 판정은 명단이 공개되지 않은 실무위원회에 속한 출제위원(교수), 평가원 내 연구원, 외부 전문가들이 했다.

평가원이 이의신청을 묵살했을 때만 해도 수능 등급이 발표되기 전이었다. 그때 좀 더 신중했다면 혼란은 줄일 수 있었다. 평가원은 22일 한국물리학회가 해당 문제의 답을 복수로 해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데 대해 지난달 28일과 같은 입장을 반복했다. 평가원 정강정 원장은 "이제 와서 문제제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평가원의 입장에는 변화 없고 등급 재산정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평가원도 해당 문제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평가원 이명준 수능처장은 "(교과서에 실렸다는 내용은) 교과서의 읽기 자료나 여백 부분의 자세한 내용에 담겨 있는 것"이라며 "수능은 60만 수험생이 보는 보편적 내용을 대상으로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평가원 관계자는 "이제 와서 복수 정답을 인정했다간 큰 혼란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며 "수험생은 억울할지 몰라도 그냥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등급 재산정하라"=복수 정답이 인정될 경우 수능 9등급을 다시 산출해야 한다. 하지만 대학들은 이미 수시 2학기 모집 합격자를 발표했고, 대부분의 대학은 이번주 정시모집 원서접수를 마감한다. 복수 정답을 인정하기에도 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서울 A고교 교사는 "평가원이 복수 정답을 인정하지 않으면 수험생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소송뿐"이라며 "소송을 하기 위해 수험생은 물리Ⅱ 과목에서 등급이 낮아 수시모집에서 탈락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복수 정답을 인정하고 등급을 다시 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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