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43. 첫 음반 녹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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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하와이로 연주와 녹음을 하러 갈 때 부인이 맞춰준 화려한 한복을 입은 필자.

“이 사진을 보십시오. 음반을 녹음한 게 바로 난데 무슨 세금을 내라는 말입니까?” 1965년 서울 명동의 중앙우체국. 나는 창구 직원과 실랑이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미국 하와이에서 녹음을 끝낸 후 음반이 나올 때까지 몇 달이 걸리기 때문에 나는 먼저 서울로 돌아왔다. 발매된 음반을 하와이에서 우편으로 보내와 받으러 갔더니 대뜸 하는 말이 “LP음반은 사치품에 해당하니 세금을 내라”는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꽤 부담되는 금액이었던 것 같다.

억울했다. “아니 외국에 가서 내 음악 앨범을 내고 왔는데 표창은 못할망정 세금을 내라니요.” 창구 직원은 내 얼굴과 음반 표지 사진을 번갈아 쳐다봤다. 자기도 뭔가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잠깐 기다리세요.”

곧 우체국장이 보자고 한다는 얘기가 들렸다. 직원이 최고 결정권자에게 자문을 청한 모양이었다. 우체국장은 나를 자기 방으로 불러 “법은 법이기 때문에 세금을 아예 안 받을 수는 없지만 우체국장 재량으로 중고품으로 쳐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나는 음반사에서 증정 받은 내 앨범을 약간의 세금에 해당하는 돈을 내고 산 셈이다.

이렇게 들여온 음반은 참 만족스러웠다. 표지 사진은 한 번에 잘 나오지 않아 자꾸 다시 찍었지만 음악만큼은 앉은 자리에서 단번에 해치운 녹음이었다. 음질을 비롯해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당시 ‘하이파이 스테레오 리뷰’라는 미국의 음반 비평 전문잡지에서는 별 다섯 개 만점을 주고 “하이 스피드 시대에 현대인에게 정신적인 해독제”라는 표현을 쓰며 극찬해줬다.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어야 한다”는 권고도 곁들였다.

매년 두 번 발간되는 학술지 ‘SEM’에서는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의 접목을 시도해왔던 일본 음악가들보다 낫다”고 호평했다. 국내 일간지들도 일제히 대서특필했다. ‘가야금 하나를 들고 외국에 나가 앨범까지 녹음했으며 대단한 반응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이 음반은 국악·양악을 통틀어 해외에서 나온 최초의 한국 음악가 독집 LP일 것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계기 이후 일이 계속 잘 진행되면 기분이 좋다. 65년 하와이에서 한 연주와 녹음은 이후 내 음악인생에 좋은 일들을 가져다 줬다. 가장 기뻤던 것은 아버지의 격려였다. 내가 음악을 한다는 사실을 별로 탐탁지 않게 여겨온 아버지가 무척 장하다며 아들을 격려하는 편지를 보낸 것이다. 그때의 기쁨은 이후 가야금 인생에 참 큰 활력소가 됐다.

황병기<가야금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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