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점쟁이들 몰락

중앙일보

입력

‘도사’는 크게 3종이다. 역술인, 무당, 그리고 풍수가다. 여기에 기(氣)를 수련했다는 계층이 보태지고 있는 추세다.

12월1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들 신통방통자가 온갖 ‘예언’을 쏟아냈다. 정확히는, 미디어가 그들의 주장을 받아 옮겼다.

예견 적중을 인정받으려면 선거일 훨씬 전에 ‘차기 대통령은 바로 ○○○’이라고 밝혀야 한다. 누가 대통령이라고 명기한 책을 내도 좋다. 개인 홈페이지에라도 예상을 공개해야 한다.

이러한 이치를 따른 도사는 죄다 체면을 구겼다. 박근혜, 정운찬, 고건, 손학규를 지명한 도사가 적지 않았다. 그래도 이 도사들은 양심적이다. 예측은 빗나갔을망정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대중을 현혹하지 않았다. 작년 말, 올 봄 사이에 용감히 일찌감치 예언했다.

개중에는 아직도 제가 옳다고 우기는 도사도 있다. 대통령 당선이라는 결과를 외면한 채 과정에 매달린다. 한나라당 당내 경선 표결에서 이긴 박근혜가 판정패하고 말았다며 스스로를 변호한다.

은유 뒤에 숨어 말과 글자 장난을 일삼기도 한다. 이현령 비현령, 황희 정승의 검정소 누렁소 식으로 경우의 수를 늘어놓고 명상, 고심하는 척 한다.

제17대 대통령 선거결과는 예언 ‘깜’도 못됐다. 이명박은 이미 지난해 9월부터 단독 선두를 달려왔다. ‘대통령 이명박’을 확언했다 해도 신기하다는 반응을 기대할 수 없는 이유다.

결국, 도사는 ‘일반인’ 만도 못했다. 이명박이 떨어지리라고 생각한 남녀는 몹시 감성적인 부류다. 비이성적인 유형이다. ‘예스’ 아니면 ‘노’였다. 적중확률 50%짜리는 도박이나 예언거리가 아니다.

30년 전부터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확신한 도사도 있을 수 있다. 이같은 초능력을 지닌 도인은 매스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도인은 이기적이다. 자기 한 몸을 위한 정신 수양 끝에 오르가슴을 맛보는 데 족할 따름이다. 인쇄매체나 방송을 통해 자신을 알린 다음 돈을 받고 점을 봐주는 절대다수 도사는 ‘신비상품’이다. 성철(1911~1993), 김수환(85) 등 하늘과 가장 가까운 인간들은 허투루 참언한 적이 없다.

대통령 후보들은 기가 아주 세다. 그런데도 도사의 교언영색에 일희일비한다. 도사 말을 믿고 멀쩡한 선조 묘까지 옮긴다. 후손 못되라고 저승에서 사악한 기운을 뿜어대는 조상은 있을 수 없다는 상식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체력 저하가 육신의 질환을 부르듯, 흥분과 기대가 지나치면 마음 한 켠에 허한 구석이 생기게 마련이다. 도사는 바로 이 구멍을 파고 들어와 똬리를 튼다. 교회나 성당에 다니면서도 인편에 거액을 찔러주고 굿판을 벌여 찜찜함을 달래는 까닭이다.

‘노무현 다음 대통령은 이명박’이라고 공언한 도사는 도사가 아니었다. 김동길(79) 아시아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이 2개월여 전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암시했을 뿐이다. 미국 뉴욕에서 김 교수는 말했다.

“(이명박) ‘저 사람 관상이 왜 이래?’하는데 두고 봐라. 아무리 방해를 해도 그 사람의 인기가 54%인데 그걸 어떻게 흔드는가”라고 선견했다. 그는 철학박사다. 철학은 학문이다. 학문은 과학이다. 여론조사도 과학이다.

로또복권 출현과 함께 도사는 정리됐다. 로또 당첨번호도 못 맞히는 도사무리에게 ‘천기누설’을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험이 쌓은 논리인 속담에 기대는 편이 낫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 그대로 정권은 10년 만에 바뀌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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