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말고 우리 먼저 챙겨라" 인식 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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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국의 유권자들은 더 이상 햇볕정책에는 관심이 없다. 17대 대통령 선거로 햇볕정책은 기로에 섰다."

영국의 가디언이 19일 보도한 내용이다. 가디언은 차기 정권의 최우선 과제로 북한 문제를 언급한 사람은 한국 유권자의 5%에 불과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면서 북한에 대한 한국 국민의 인식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가디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수백만 달러를 몰래 지원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휴전선 너머 있는 사람 말고 우리 먼저 챙겨 달라'는 요구가 한국 국민 사이에 팽배하다"고 보도했다. 민심이 예전만 못한 상태에서 햇볕정책이 그대로 계승될 가능성은 작다는 분석이다. 그러면서 가디언은 남북 관계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미국이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당선자가 노무현 대통령에 비해 친미적이기 때문에 미국의 입장이 달라진다면 남북 관계는 그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중국.일본 등 6자회담 당사국들도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면서 그동안 한국의 좌파정권이 유지해 온 햇볕정책에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오리라는 조심스러운 분석을 내놓았다.

북한 문제에 정통한 야마사키 다쿠(山崎拓) 전 일본 자민당 부총재는 "햇볕 정책을 10년간 유지해 온 한국에서 새롭게 보수 정권이 들어서게 돼 다소의 변화가 예상된다"며 "북한 핵 문제와 납치 문제 해결에 있어 한국의 새 정권과 일본이 긴밀하게 협조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중국의 대표적인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장롄구이(張璉王鬼) 중앙당교 교수(베이징대 한국연구센터 겸임연구원)도 "한국의 대북정책이 김대중과 노무현 시대의 화해협력 노선을 기초로 하되 적잖은 수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장 교수는 "남북이 대립하던 전두환 시대로 돌아가서는 안 되겠지만 일방적 지원보다는 상호주의로 가야 장기적으로 남북 관계가 안정되고 발전될 수 있다"고 충고했다.

미국에서는 한국이 이제 북한에도 당당히 할 말을 하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피터 벡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자유아시아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집권 10년 동안 한국 정부는 북한 눈치를 보느라 북한 인권 문제를 등한시했다"며 "한국의 새 정부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그동안 죽여왔던 자기 목소리를 찾기 바란다"고 말했다.

USA투데이는 "많은 한국인이 '북한을 도와서 돌아온 게 뭐냐'며 염증을 느끼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 당선자는 북한의 경제 개방.개발을 전제로 한 지원을 공약했고, 이런 상호적인 남북정책이 지지를 얻었다고 전했다.

도쿄.베이징=김현기.장세정 특파원,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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