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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이제 ‘경제’ 넘어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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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스토리는 이렇다. 경제동물이란 말을 처음 쓴 것은 파키스탄의 전 총리인 부토였다. 그는 일본인이 경제적 재능을 갖고 있다는 뜻으로 이 말을 사용했다. 마치 정치적으로 탁월했던 영국의 처칠 총리를 가리켜 사람들이 “정치동물(Political Animal)”이라 한 것처럼. 하지만 일본인 번역자의 자괴심 때문에 그 의도가 잘못 전달됐고 이후 네거티브한 의미로 쓰였다는 것이다.

17대 대선은 우리 국민이 이런 의미에서 일본인에 이어 경제동물이 되었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선택의 초점은 단 하나, 경제가 활성화되는가 어떤가였다. 다른 이슈는 모두 뒷전으로 물러났다. 이전 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층이 이명박 후보로 돌아선 것도, 내심 보수적인 유권자층이 이회창 후보로 선회하지 않은 것도 기본적으로는 경제 때문이었다.

선거가 본질적으로 권력투쟁인 이상 이기기 위해 올인하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선택이 끝난 이제 우리는 역설적이지만 ‘경제’를 넘어서야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이 경제동물이라고 해서 나라까지 경제동물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개개인은 설사 돈만 안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는 한 크게 문제가 안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라를 책임지는 정치가는 다르다. 국민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다양성 속에서 컨센서스를 창조해내는 것이 정치가의 본령이다. 말 그대로 ‘정치동물’이 지도자의 제일 중요한 자질인 것이다. 우리 사회의 내적 균열이 심각한 상태인 점에 비추면 특히 그렇다.

따라서 이명박 당선자는 ‘CEO 대통령’을 넘어서야 한다. 물론 기업이라고 해서 조정이 필요치 않은 것은 아닌 만큼 CEO 스타일의 대통령이 국민통합을 해내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CEO가 기업목적을 위해 사람을 자를 수 있음에 반해 대통령은 어떤 목적으로도 국민을 자를 수 없다. 그 목표와 수단에 있어 대통령은 본질적으로 CEO와 다른 것이다.

돌이켜 보면 유권자들이 ‘CEO’라는 모토에 이끌린 것은 그것이 ‘추진력’과 함께 ‘합리적’이라는 어감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위야 어떻든 이명박씨는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특검 조사를 받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CEO가 추진력은 있어도 합리적이지는 않을 수 있다는 한국적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아직도 투명성이나 설명책임(accountability)과 같은 토대를 충분히 갖추고 있지 못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처음으로 돌아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경제적 재능이 뛰어나다 해도 우리 국민은 ‘경제동물’로 간주되어 진짜로 좋은가라고. 투명성이나 룰이나 윤리는 접어 두고 경제적으로 좋으면 그것으로 괜찮은가라고.

이에 대한 대답의 실마리는 일본인 스스로가 제공해 준다. 좀 수그러들었다고는 하지만 한류는 여전히 붐이다. 웬만한 한국 연예인의 팬사인회는 금세 표가 동이 난다. 하지만 이는 연예기획사의 뛰어난 마케팅 때문만도, 연예인들의 탁월한 연기력 탓만도 아니다. 한류가 보여 주는 진실성의 한 자락이 그들을 매료시키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이수현이라는 유학생이 지하철에서 몸을 던져 자기 나라 사람을 구해낸 데 대한 고마움과 신뢰가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경제동물 일본인을 움직이는 것조차 진실과 신뢰다. 이들 사회자본(Social Capital) 없이는 경제성장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사회가 선진화할수록 이들의 비중이 커지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국민이 진실과 신뢰를 형성해 낼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대선을 계기로 눈앞의 이익만이 아닌 큰 경제, 경제만이 아닌 큰 정치를 우리 국민이 이끌고 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우종원 일본국립 사이타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