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well-being] 앞치마 두른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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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살림씨는 집에만 들어오면 식물인간이 됩니다. "밥은 전기밥솥이 하고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 거잖아"라며 큰소리치던 박씨, 막상 전기밥솥.세탁기 작동법도 모릅니다. 아내가 친정에 며칠 가 있거나 몸살이라도 나면 가스레인지 켜는 법도 몰라 당황하곤 합니다.

week&은 살림에 무지한 남성들의 생존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살림하는 남편들의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필자는 전업 남편의 모임인 주부(主夫)클럽 회원들입니다. 첫 테이프는 '인천댁의 살림주머니 (cafe.daum.net/namjajubu)' 운영자인 8년차 주부 차영회(사진)씨가 끊습니다.

"아휴, 이 냄새! 또 물 안 내렸네! 물 한 바가지 아끼려다가 코 썩어서 병원비가 더 나가겠어!"

욕실에 들어가던 아내가 변기 물을 내리며 한바탕 퍼부었다. 아내는 물을 연거푸 내리며 잔소리를 계속했다. 변기 통이 깨끗하지 못하다는 말에 기가 죽어 있던 나는 아내가 자꾸 헛물을 쓰는 것을 보고 일어섰다.

"알았으니까 물 좀 그만 내려!"

"맞아 엄마! 오줌 두 번 누고 물 내려야 되는데 그냥 내리면 어떡해?"

아들 준호(11)가 내 말에 맞장구를 치며 곤경에 빠진 나를 지원했다.

"냄새가 나면 어때, 가정 경제가 튼튼해지는데…. 그치, 아빠?"

"알았네요. 하여간 네 아빠는 집에서 살림하는 게 아니라 사고만 쳐요.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살림을 한다니까."

틈만 나면 아내가 타박거리로 내놓는 '변기 사건'이 일어난 지도 벌써 1년이 더 지났다. 딸 민해(13)가 '아나바다 운동'에 참여한다며 화장실 변기 통에 벽돌을 한 장 넣자고 제안한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아내와 나는 '참 좋은 생각이네'라며 민해를 칭찬하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러자 며칠 뒤에 아들 준호가 어디서 들었는지, 아니면 제 생각인지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

"오줌을 두 번 누고 물을 내리면 물 값으로 집을 살 수 있대. 우리도 해 봐!"

그래서 준호와 나의 '오줌 두 번 누고 물 한 번 내리기'가 시작됐다. 준호는 식구들이 화장실에 들어가면 기다렸다는 듯 '물 내리지마!'를 외치고 억지로 오줌을 몇 방울 누기도 했다. 그러다 이젠 아예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아빠 잠깐!" 하면서 하던 일을 멈추고 뛰어 들어와 비집고 같이 섰다. 녀석은 오줌을 누면서 오줌발끼리 서로 부딪히는 싸움을 걸기도 하고, 곁눈질로 아빠를 훔쳐보며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오줌이 변기 밖으로 튀어나가는 것은 다반사였다.

아내의 타박이 시작된 건 가끔 같이 누지 못하고 물을 나중에 내리다 보니 냄새가 좀(?) 나는 경우가 생기면서다. 아내 말처럼 냄새로 고통받고 바닥에 흘러내린 오줌을 씻어내느라고 드는 물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준호를 말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아이들이 아주 작은 것이라도 소중하게 여기고 절약하는 습관을 기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막상 아내는 자기가 살림을 할 때 콩나물 값 백원, 두부 값 백원씩을 아끼던 마음을 잊어버렸나 보다. 콩나물 값 백원이 오르는 건 주부들에게는 큰 문제다. 콩나물 값이 오르면 콩나물만 오르나. 다른 농산물 값도 덩달아 오른다. 그러다 보면 한 달에 식비 4만~5만원쯤은 더 나가기 마련이다. 만약 주부들이 '그까짓 백원쯤이야!'라며 호탕하고 폼 나게 살림을 한다면 열흘도 못 버틴다는 걸 남자들은 모를 것이다.

아내의 잔소리가 사라진 뒤 화장실에 들어가니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아내가 변기통에 락스를 붓는 사고(?)를 친 것이다. 물론 락스를 쓰면 때가 잘 지워진다. 그러나 냄새가 고약한 데다 환경 오염도 심하기 때문에 나는 거의 쓰지 않는다. 락스 대신 식초를 사용해도 얼마든지 깨끗하게 청소할 수 있는데 아내는 괜한 일거리만 만들어놨다. 이번에 내가 투덜대며 화장실 청소를 시작했다.

글=인천댁 차영회,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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