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있는풍경>충북괴산 청안면 응달마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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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충북 괴산과 화양구곡을 잇는 길마재 고개는 설악의 한계령을 닮았다. 칠보산 가슴팍을 쉼없이 S자형으로 가로 지르는 산길을반정도 달려 숨을 한번 들이킬 즈음 초옥 4가구가 응달 속에 잠겨있는 작은 마을을 만나게 된다.
마을 초입에 길을 등지고 돌아앉아 그 앞모습이 궁금해지는 「응달마당」(음식점 겸 찻집.충북괴산군청안면문당리)은 그렇게 선채로 어쩌다 지나는 과객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옛 시골민가를 재현한 무대의 세트같은 이곳에는 조선시대 고리짝과 백자에서부터 질화로.놋주걱.인두.씨앗을 넣는 짚풀자루인 종다리끼,등잔과 꽹과리,소주와 식초를 내리는 독,여물통,키,등잔 등에 이르기까지 1천5백여점이 실내의 네 벽과 천장.바닥을남김없이 뒤덮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음식점 외벽과 앞마당 나무.고목 등걸에 다닥다닥 걸려 있는 모습은 절로 탄성을 지르게 한다.
순간 토끼와 오리전골에 대추술을 곁들여 파는 이 음식점 주인을 찾아 도대체 누가 어디서 이 소중한 것들을 모아 쌓아놓고 있는지 자초지종을 묻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된다.
왠지 음식점 주인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체격이 장대한 이종우(李鍾雨.47)씨와 연극배우같은 그의 아내 이재숙(李載淑.44)씨는 빨갛게 달궈진 난로가에서 큰창에 걸려있는 겨울풍경을 내다보며 할듯 말듯 지난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서울에서 대학(정외과)을 나온 후 사업에 실패한 남편 李씨가이곳에 응달마당을 세운 것은 지난 90년.사업 실패로 인해 방황하면서 마음을 다잡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수석채집에 몰두했던 그가 옛 생활용구들을 모으게 된 것은 우연이 었다.
수석을 마음내키는대로 이리저리 연출하다 보니 소품으로 손때묻은 조상의 생활용품이 제격이란 생각이 들었고 한점 두점 모으면서 마음을 완전히 빼앗겨 지난 20년간 전국의 촌가를 누비게 됐다. 李씨가 손님이 도통 없을 것같은 길마재 고개에 응달마당을 연 것은 이 자료들을 자연스럽게 보관도 하고 그 스스로 즐기기 위해서였다.
가슴을 저미는 국악의 구성진 가락이 실내에 울려퍼져 속세를 떠나있는 기분을 주는 이곳에는 충청도 일대의 「글쟁이」「그림쟁이」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먼저 간 사람들의 인정이 배있는 듯한 이 생활용품들을 잘 보관할 수 있도록 조촐한 자료관을 하나 차리고 아내가 충청도의무명연극인들이 설 무대를 하나 마련하고 싶다니 뒷마당에 작은 창고를 하나 더 지을 생각입니다.』그는 약아빠진 서 울사람들이오가다 우연히 들러 대뜸 이것들을 돈으로 환산해 보고는 혀를 내두를 때 가장 맥이 빠진다고 했다.
[槐山=高惠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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