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새 정부 균형발전계획 다시 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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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그럼에도 차기 정부는 좋든 싫든 참여정부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지역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 회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벅찬 과제를 떠안아야 한다.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참여정부 초기에 외쳐 댔던 동북아 중심 슬로건은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고, 수도권 규제는 균형발전정책이 가시화될 때까지 볼모로 잡혀 있다. 균형발전정책의 일환이었던 지방분권 역시 종적을 감춘 지 오래다. 반면 행정중심복합도시와 혁신도시 건설의 가시적 성과를 위해 참여정부는 호언대로 대못질을 해 버렸다. 이 유산만 추스르기에도 새 정부의 일은 넘쳐날 것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에 대해 일부 후보는 노골적으로 신행정수도의 재추진 의사를 밝히고 있다. 다른 후보들은 국제적인 과학·교육도시로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만큼 수도 분할 논란까지 야기한 행정중심복합도시는 언젠가 그 태생적 결함을 치유해야만 한다. 중앙정부 기능의 양분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눈 뜨고 볼 수 없다면, 지역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 회복을 위해 차라리 온전한 행정수도와 수도권 규제 철폐를 주고받는 빅딜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수도권과 충청권을 거대 도시지역으로 묶는 신국토전략을 짤 수도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178개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이다. 차기 정부는 적어도 세 가지 요소를 고려, 추진과정을 재검토해야 한다. 우선 참여정부 들어 흐지부지된 공기업 통폐합과 민영화 등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을 먼저 시행해야 한다. 흔히 공기업은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이라 말하듯 공공부문의 비효율성은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좀먹는 요인이다. 그러나 일단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이 확정되면 지역주의와 맞물려 이를 개혁하기 힘들어진다. 일례로 선도 이전기관인 주택공사와 토지공사가 각각 진주와 완산·전주로 이전하면 양 기관의 통합은 지역갈등 문제로 비화돼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공공기관을 전국 10개 지역으로 분산시키는 것은 태산을 무너뜨려 티끌을 만드는 격이다. 공공기관 업무의 비효율을 가속화시킬 뿐이다. 좁은 국토에서 10개 도시 모두가 동시에 지역혁신을 이루리라고 기대하기는 무리다. 보다 광역화해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문제는 그간 손 놓고 있던 행정구역의 단순화·광역화 작업과 함께 연계해 추진해야 한다.

셋째, 설혹 공공기관 이전이 현재의 계획대로 추진된다 해도 지금 같은 대규모 신도시 건설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누차 지적됐듯 거대 혁신도시 건설은 기성 시가지의 쇠퇴를 더욱 가속화시킴으로써 지방을 살리려는 정책이 오히려 지방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혁신도시의 재검토 과정에서 불거질 지역의 반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은 참여정부에서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던 지방분권이다. 지방이 더 이상 중앙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스스로 지역발전을 주도할 수 있는 권한과 재원을 갖도록 한다면 혁신도시와의 빅딜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참여정부는 최근 28개 공공기관의 지방이전 계획을 확정했고, 나머지 150개 기관도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내년 초 이전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참여정부의 뒤치다꺼리에 매달려야 할 새 정부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조금이나마 그 부담을 경감시켜 주는 것이 국가경영의 정도다.

최막중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