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카페] ‘BBK 검사’ 탄핵안 불발로 끝났지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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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 13면

대통합민주신당이 발의한 BBK 사건 수사검사 3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처리시한을 넘겨 자동 폐기됐다. 가결되려면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150석)를 확보해야 하는데 국회 보고 후 72시간이 되는 15일 오후 2시까지 표결하지 못한 것이다.

탄핵제도란 형벌이나 통상의 징계절차로써는 처벌하기 어려운 고위직 공무원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과 법률을 위배했을 경우 공직으로부터 파면시키는 것이다. 정부와 법원에 대한 국회의 권력 견제장치다. 헌법 제65조는 탄핵 대상을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행정각부의 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법관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탄핵제도는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14세기 영국에서 일반 법원이 처벌하지 못하는 정부 대신이나 대귀족을 통제하는 제도로 확립됐다. 최근에는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과 르윈스키의 관계가 결국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까지 이어진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클린턴 대통령은 하원에서 탄핵되었으나 상원에서 의결정족수에 못미친 덕에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서의 탄핵 확정은 상원이 결정하며 상원의원 100명 중 3분의 2 이상인 67명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탄핵은 오늘날 미국·독일·일본·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다. 실제 운용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 ‘헌법의 장식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검찰이 공소권을 독점하고 있고 기소되지 않는 고급 공무원에 대한 법원의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헌법수호를 위한 제도로서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제헌헌법부터 탄핵제도를 두었지만 탄핵심판권을 갖는 기관이 탄핵재판소(제1공화국)-헌법재판소(제2공화국)-탄핵심판위원회(제3공화국)-헌법위원회(제4·5공화국)로 바뀌었다. 그러다 1987년의 제9차 헌법개헌으로 마침내 헌법재판소로 정착했다. 실제로 탄핵 절차가 이루어진 것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유명무실한 탄핵제도가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냈다는 데 역사적 의의가 있다.

검사는 헌법 제65조에 직접 열거된 탄핵의 대상은 아니지만 검찰청법 제37조에 의해 탄핵의 대상이 된다. 검사의 기소권한을 통제하는 제도로는 항고·재항고, 재정신청, 헌법소원의 절차가 있지만 탄핵은 그 직을 파면하는 강력한 통제수단이다.

검사에 대한 탄핵 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이뤄지며 6인 이상의 헌법재판관의 찬성으로 탄핵이 결정된다. 탄핵결정이 내려지면 검사는 공직에서 파면되며 탄핵과 별도로 형· 민사상 책임추궁이 뒤따르게 된다.

이번 탄핵사건의 관건은 검사가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문제의 검사들이 기소를 위한 수사라는 직무를 집행하면서 피의자를 회유·협박하거나 증거조작·사실은폐 등의 방법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적법절차나 형사 절차상 피의자의 권리를 침해했는지를 따져야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탄핵소추안이 자동 폐기됐다. 그러나 이번 소추안을 놓고 국민은 그 의미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대선을 목전에 두고 검찰이 위법행위를 할 정도로 오만했는지, 아니면 정치권이 무리하게 정치적 공세를 취했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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