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영원한 이웃 ‘중화 문명’ 153개 키워드로 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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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중국문명대시야


배아징대학교 중국전통문화연구중심 엮음, 김호림 외 옮김, 김영사, 전 4권 각 540쪽 안팎, 각권 3만5000원
 
“…진흙 한 덩어리로 당신을 빚고 또 나를 빚고/ 다시 무너뜨려 물 붓고 이리저리 섞어/ 당신을 빚고 또 나를 빚고/ 내 진흙 속에 당신이 있고/ 당신의 진흙 속에 또 내가 있네…”
 
시화(詩畵)에 능했던 원대(元代)의 여류 문인 관도승(管道昇, 1262~1319)이 남긴 시 ‘너와 나의 시’ 일부다. 송설체(宋雪體)의 창시자로 당대 최고의 명필로 이름을 날리던 남편 조맹부가 첩을 들이려 하자 넌지시 건넨 그의 마음이다. 조맹부가 다시는 첩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한중 수교 15주년을 맞은 올해 김하중 주중 한국대사는 한 강연에서 한중 관계를 “내 속에 네가 있고, 네 속에 내가 있는 관계”라고 말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양국 관계를 빗댄 것이다. 그런 양국 관계를 수식하는 외교적 언어는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다. 하루 1만1000여 명의 한국인이 매주 800여 항공편을 통해 30여 개의 중국 도시를 오간다. 중국 체류 한국인이 70만 명으로, 2010년이면 100만 명을 무난히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그런 ‘영원한 이웃’ 중국에 대해 우리는 수교 15년을 통해 얼마만큼 이해의 폭을 넓혔을까. 여전히 ‘알쏭달쏭하다’는 답이 제일 많지 않을까 싶다. 사실 13억의 중국인이 한반도 44배 가까운 크기의 광활한 대륙에서 오천년 가까이 엮어온 서사(敍事)를 한숨에 들이마셔 파악하기는 애당초 무리다. 그런 마당에 중국 전통문화를 알기 쉽게 정리한 이 책은 중화 문명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 훌륭한 입문서라 할 만하다.
 
고대의 신화전설 시대부터 1919년 5·4 운동 때까지 ‘중국의 오천 년’의 전통문화를 다룬 이 책은 여러 장점을 갖고 있다.

첫째는 중화 문명을 전방위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중국의 역사와 풍속, 지리 공간을 총론적으로 정리했다. 이어 구리 북인 동고(銅鼓), 중국의 전통 가옥인 사합원(四合院) 구조 등과 같은 중국 문명의 주요 외형들을 상세하게 다뤘다. 덧붙여 시와 그림 등 문화 유산과 중국의 정신 세계까지 체계적으로 담아냈다. 153개의 핵심 아이템들을 통해 어느 한쪽에 특별히 치우치지 않고 중화 문명의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둘째는 권위성이다. 베이징대학 전통문화연구중심이 기획한 이 프로젝트에 중국 각 분야의 석학 112명이 집필진으로 참여했다. 1994년부터 98년까지 4년 간에 걸친 원고 작성, 이후 5년의 사진 촬영과 자료 보완 등 꼼꼼한 편집과정을 거친 만큼 내용이 탄탄하다. 셋째는 재미다. 자칫 딱딱한 역사책으로 흐를까 고심한 흔적이 뚜렷하다. 호기심을 자아내는 많은 이야기 거리가 실려 있다. 특히 2000여 컷에 달하는 사진 자료는 글에 생동감을 안긴다. 중국에서 2002년 출간된 이 책이 3000여 종의 다른 도서들을 제치고 ‘중국국가도서상’을 수상한 게 그리 놀랄 일은 아닌 듯이 보인다.
 
약점을 꼽으라면 중화 문명에 대한 입문서 성격을 띠는 대중 교양서이니만큼 ‘깊이’도 원하는 이들까지 만족시키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또한 장점으로 둔갑될 수 있을 것 같다.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시켜 더 너른 중국 문명 탐구의 길로 나아가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유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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