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권은 한국 공연 죽이는 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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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대한민국 최고의 공연장은 어딜까.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아니면 국립극장? 그러나 올해의 조사 결과는 의외다. 생긴 지 7년밖에 안된 LG아트센터다.

 LG아트센터는 한국표준협회와 중앙일보가 관객의 만족도를 토대로 심층 분석하는 서비스 품질지수에서 72.6점으로 공연장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최근 한 언론사가 90여명의 공연 관계자를 대상으로 최고의 공연장을 묻는 설문조사에서도 예술의전당을 간발의 차로 누르고 1위에 올랐다.

 1100여석에 불과한 극장 하나 밖에 없는 민간 시설인 LG아트센터가 엄청난 규모와 시설을 자랑하는 국·공립 공연장보다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뭘까. 개관 때부터 극장을 이끌어 온 김의준(57)대표에게 그 비결을 물었다.

-최근 주요 공연장들의 화두는 ‘수익성’과 ‘재정 자립도’다. LG아트센터는 어떤가.

 “평균 한 해 80억원의 돈이 든다. 공연제작비·인건비·시설 임대료 등이 큰 부분이다. 한 해 공연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40억원 가량이다. 재정 자립도는 50% 안팎이다.”

 -50%는 어떤 의미인가.

 “전세계 어디에도 순수 예술을 지향하는 공연장 중 재정자립도가 50%를 넘는 곳은 없다. 자립도를 강조하는 순간, 공연장은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예술성은 사라진 채 상업성만이 창궐할 뿐이다. 이 정도면 족하다.”

 -매년 40억원씩 손실을 본다면 어떤 기업이 공연장을 짓겠는가.

 “수익성을 쫓는 공연장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출발점이다. 수익을 목표로 한다면 뮤지컬 전용관이나 대중음악 공연장을 지으면 된다. 그러나 LG아트센터는 출발부터 순수 예술을 지향했고, 대관이 아닌 기획 공연을 중시했다. 이로 인해 높아지는 기업 브랜드 이미지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껏 LG아트센터는 한해 평균 55%를 기획 공연으로 채웠다(※지난해 산하단체 공연을 제외한 기획공연 비율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32%,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9.3%, 국립극장 18%다).

 -그래도 예술성 추구는 너무 주관적 기준 아닌가.

 “기획자의 안목을 믿고 맡길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모기업인 LG는 무섭다. 개관 이후 지금껏 단 한번도 개입하지 않는다. 그만큼 책임도 100%져야 한다. 작품 선정이 엄격해질 수 밖에 없다. LG아트센터 직원들은 한해 평균 10회 가량 해외에 나가 좋은 작품을 고른다. 작품 선정의 첫번째 기준 역시 담당 기획자의 ‘눈’이다. ‘자기가 좋지 않은데 과연 관객이 좋아할까’는 생각 때문이다.”

 -공연 매니어들 사이에서 ‘LG아트센터 공연은 뭔가 다르다’는 얘기가 나돈다.

 “피나 바우쉬·매튜 본·레프 도진 등이 LG아트센터를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된 대표적 아티스트다.”

 -초대권도 없다.

 “예전 근무 당시(김 대표는 1984년부터 12년간 예술의전당에서 일했다), 공연 1주일 전쯤 되면 초대권 때문에 아무 일도 못 했다. 누구는 날짜 바꿔달라, 어떤 이는 자리가 나쁘다, 또 다른 이는 몇명 더 데리고 오겠다며 난리였다. 아는 사람이 식당 내고 양복점 냈다고 가서 공짜로 밥 먹고 옷 사는가? 초대권은 한국 공연을 죽이는 암이다.”

 -대선을 앞두고 문화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칭기스칸이 세계를 정복한 뒤 왜 곧 쓰러졌을까. 문화가 없기 때문이었다. 문화를 얘기해도 늘 경쟁력·부가가치창출 등 기능적인 부분만을 말하곤 한다. 그러나 21세기 리더십은 수치가 아닌 감성을 자극하는 ‘감동 리더십’이어야 하며, 이는 곧 ‘문화 리더십’이다. 순수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만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바탕이다.”

◆김의준은=1950년 경북 김천 출신. 고려대 영문과를 나와 건설회사(대림산업)에서 일하다 예술의전당 건립때 참여하면서 공연계로 방향을 틀었다. 예술의전당에선 기업 협찬에 뛰어난 수완을 발휘했다. 건설과 공연을 다 알고 있다는 점 때문에 96년 LG아트센터 첫 삽을 뜰 때부터 대표를 맡았다. 본인 스스로는 “뿌리가 약한 순 엉터리”라고 겸손해한다. 술은 거의 마시지 못하고 골프도 못 친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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