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holic] 옛 도쿄도립대 동창들 '유라시아 도보 횡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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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의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첫발을 내디딘 지 벌써 11년이 지났습니다."

학창 시절 '반더포겔(Wandervogel.1901년 독일에서 시작된 청년도보여행장려회)' 활동을 했던 60~70대 퇴직자들이 유라시아 대륙을 걸어 횡단하고 있다. 전체 2만㎞를 몇 백㎞씩 여러 구간으로 나눠 한 팀이 한 구간씩 맡는 식이다. 걷는 목적은 여행을 하며 이국 문화를 보다 가까이 체험하기 위해서다. 걷기를 통해 노년기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이들은 올해 중국 시안(西安)에 도착한 기념으로 12일 도쿄에서 기념 사진전을 열었다. 내년 5월 걷기를 재개해 시안~베이징 구간을 주파할 계획이다. 2009년에는 베이징에서 동북부 단둥(丹東)까지 걸을 예정이다. '금단의 땅' 북한은 건너뛰고 2010년에는 한국에 입성한다. 인천으로 들어와 서울을 거쳐 중부 지방의 여러 도시를 거친 뒤 남쪽으로 향해 부산과 제주도까지 밟아볼 계획이다.

이들이 대장정을 처음 논의한 것은 95년 가을이었다. 학창 시절 함께 땀을 흘렸던 도쿄도립대학(현 수도대학도쿄) 반더포겔 부원들이 정년 뒤 한두 명씩 연락을 주고받다 사회생활로 중단했던 걷기 활동을 재개하기로 한 것이다. 나이도 들면서 걷기의 필요성이 더욱 절감하던 터였다. 모임의 명칭을 '유라시아를 걷는 모임'으로 정하자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선후배들이 찾아와 회원은 현재 50명으로 불어났다.

첫 출발지는 그리니치 표준시 때문에 '시간의 출발지'로 불리는 런던 그리니치로 정했다. 첫발은 이듬해 와다 고이치(和田航一)를 비롯한 4명의 창단 멤버가 함께 뗐다. 그리니치에서 런던을 관통해 해안으로 가는 구간으로 거리가 130㎞ 정도여서 하루에 40㎞ 이상 걸어 사흘 만에 주파했다. 와다는 "목표를 갖고 걷기를 해보니 아주 마음에 들어 유라시아 횡단 계획을 반드시 이루기로 동료와 굳게 약속했다"며 11년 전 첫 걷기의 감회를 말했다. 그는 "걷기를 통해 세계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이국적인 문화를 체험하고,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의지를 확인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듬해 프랑스에서 240㎞를 걸었다. 룩셈부르크와 독일을 걸을 때까지는 한두 명이 일정 거리를 걷다가 다른 이에게 바통을 넘기는 릴레이 방식으로 주파했다. 순번을 정해 일부가 걷는 사이 나머지는 문화를 체험하고 쉬어 가면서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동유럽과 옛 소련 지역으로 들어가면서 열악한 치안이 문제가 됐다. 이 때문에 릴레이 방식을 포기하고, 5~6명이 처음부터 목적지까지 함께 걷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사진전을 담당한 아라이 다쓰오(荒井龍男)는 "종착지는 도쿄가 될 텐데, 일본에서는 4~5년에 걸쳐 전국 곳곳을 걸어볼 생각"이라며 "걷기는 가족.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기 때문에 건강이 허락하는 한 평생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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