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이거나 극기이거나 - 숯불걷기(firewalking)로 마음을 치유하는 사람들

중앙일보

입력

섭씨 800도를 넘나드는 숯불 위를 맨발로 걸을 수 있을까? 발바닥이 무쇠로 만들어지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런데 그 불덩어리 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걷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게 과연 사실일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지난 11월 25일에 열린 숯불걷기의 현장을 살펴보았다.

숯불걷기 행사장에는 프로그램을 감독할 전문가와 가족 단위의 참여자들까지 모두 서른 명 가까이 모였다. 아이들은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마냥 뛰노는데, 어른들은 숯불주단을 준비하느라 상기된 표정이다. 몇 시간가량 나무를 태우고 숯을 구운 다음에 준비된 3미터 가량의 숯불주단. 기네스 공식기록에 의하면 이 뜨거운 불 위를 220보까지 걸은 캐나다인이 있다는데 막상 불가에 서 있는 사람들 표정을 보니 한발자국이라도 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글거리는 레드카펫을 눈앞에 두고 너나 할 것 없이 숨죽이고 있는 풍경.
‘두려워할 거면서 왜 굳이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일까’ 회의가 들 무렵 누군가 앞줄로 다가온다. 그러더니 숯불에 기름을 붓는 게 아닌가. 웅크리고 있던 불씨가 용의 입김처럼 맹렬하게 타오르니 더럭 겁이 난다.
그런데 어인 일일까. 공중까지 치솟는 불길과 함께 사람들의 용기도 마법처럼 부풀어 올랐다. 이내 불길 앞에 선 첫 도전자. 그는 기도하듯 눈을 감으며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건네듯 중얼거린다.

‘나는 이 길을 걸어야 한다. 도망가지 않겠다... 지금은 눈이 내리고 있다... 눈송이들이 나를 둘러싸고 춤을 춘다. 나는 차가운 눈밭을 걷고 있다......’
투명하고 차가운 고드름의 감촉 그리고 새하얀 눈밭... 마음이 육신에게 끊임없이 속삭이며 용기를 주는 동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조금 전만 해도 두려움에 떨며 긴장했던 한 남성이 뜨거운 불길을 무사히 다 완보한 것이다. 숯불걷기의 선배들은 대견한 눈빛으로 박수를 건네지만 두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겠는 구경꾼들은 한결같은 소리로 수군대기시작 한다. ‘발바닥 멀쩡하대? 화상 입은 거 아니야?’
놀랍게도 주인공의 발바닥은 설원에서 갓 빠져나온 듯 깨끗했다. 숯불걷기에 성공했다는 성취감에 황홀지경인 주인공. 그는 뜨거운 불 위로 발을 내민 그 결단의 순간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참가자 모두 사전에 일정한 교육을 받지만 막상 화기가 느껴지는 불 앞에 서고 보면 마음이 달라진다. 다 큰 어른이 아이처럼 엄살을 피우며 뒤로 내뺄 때는 남의 일인 양 웃음보를 터뜨렸다가도 막상 내 차례가 되면 숨이 막힌다. 작년에 숯불걷기에 실패했던 한 새댁이 올해는 자존심 회복을 위해 할 수 없이 불 위로 섰다. 완벽하게 몰입하지 못했으니 화기를 느낀 표정이 압권으로 일그러진다. 새댁뿐이랴, 몇 번이고 주저하며 망설이던 남자 회원 역시 불판 위의 쭈꾸미 신세다. 어찌 보면 위험천만해 보이는 모습들. 때문에 숯불걷기는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의 지도 내에서만 행해져야 한다.
일반인들에겐 막연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숯불걷기,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마음을 치료하고 새 삶을 찾았다. 이날 참석한 회원 중 가장 두드러지는 사례로는 숯불걷기로 인해 언어장애를 극복한 청년과 우울증을 치료한 아주머니였다.

숯불걷기는 고대 여러 문화권에서 주술적 행위로 이루어졌던 역사 깊은 문화다. 이 고대 문화를 현대인의 치료법으로 고안하여 개발 한 사람은 미국인 톨리 버칸 (Tolly Burkan). 그는 숯불 위를 걷는 독특한 경험이 현대인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대중 치료법으로 보급하기 시작했으며 캘리포니아의 국립공원 ‘요세미티산’에 F.I.R.E. (Firewalking Institute of Research and Education)를 창설하여 오늘날까지 "숯불걷기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숯불은 인생의 난관, 고통, 장애를 상징한다.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불행을 현실보다 더욱 과장되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스스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고 회피한다는 것이다. ‘에이 난 불가능해, 내겐 그럴 용기가 없어.’ 이 한마디로 기회를 놓쳐버리고 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몇 백도에 달하는 온도보다 더욱 극복하기 어려운 것 그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이 아닐까. 내 마음 깊은 곳에 굳어 있는 온갖 부정적인 선입견들을 한 방에 날려버릴 수만 있다면 ‘숯불걷기’ 도 도전해 볼만한 ‘걷기’의 하나 아닐까? 걷기 혹은 극기!

tip: 숯불걷기 대회 참가는 설기문 박사의 마인드 코치 홈페이지에 가서 상담과 하께 참가신청하면 된다. http://www.mindcoach.co.kr/

객원기자 설은영 skrn77@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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