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욱칼럼>단체장선거 연기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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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내년 6월말로 예정된 4개 지방선거가 너무 과속(過速)이라는이견(異見)이 집권 민자당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기초및 광역지방자치단체 의회선거와 함께 새로 실시되는 기초및 광역 자치단체장 동시선거가 무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야당은 물론 여당내에서도 아직 별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지방자치제 실시→중단→재시행이란 우리 헌정사(憲政史)의 우여곡절이나 정치적 명분론에서 보면 이런 주장은 호응을 얻기보다는 경계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부터 시행되던 지방자치가 5.16이후 군사정권에 의해 30여년간 중단되자 우리 국민들의 심저(心底)에는 지자제회복은 곧 민주회복이란 의식이 자리잡았다.사실 민주주의란 자기통치이기 때문에 지방주민의 자기통치 인 지방자치는 민주정치의 기본요소임에 틀림없다.민주주의 선진국치고 지방자치가 뿌리내리지 않은 곳이 없다.
흔히 지방자치는 민주정치의 훈련장으로 간주된다.그래서 풀뿌리민주정치(Grassroots Democracy)라고도 부른다.
또 지방자치가 활성화되면 지방의 문제가 곧장 국가중추부의 책임으로 정치 이슈화되거나 중앙정국의 불안이 그대로 전국 방방곡곡의 불안으로 확산되는 것을 완화시키는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우리의 독특한 역사와 지자제 자체의 민주제도란 성격 때문에 지자제 확대실시에 대한 문제제기는 마치 터부(禁忌)처럼되어있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지자제의 전면실시 원칙이 서 있는 이상논의 자체를 금기시해선 안된다.오히려 지금은 지방자치의 전통이약한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하면 지자제가 잘 뿌리내리게 할 것인가를 놓고 활발한 토론을 벌일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4개 지방선거가 일단 실시되고 나면 이미 기득권에 얽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문제점을 고치기가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당장 내년 6월에 지자제를 전면 실시하기로 되어 있지만 걱정되는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구역이 적정하지 못하다.기초자치단체의인구.면적이 너무 많고 크다.市를 제외한 현재의 기초 자치구역은 단순한 행정구역을 그대로 자치구역으로 바꾼 것이다.지자체의행정.재정능력이나 주민의 참여등이 전혀 고려되 어 있지 않다.
우리 市.區같은 많은 인구와 郡같은 넓은 면적을 가진 대규모 기초자치단체는 외국에도 별로 예가 없다.이런 대단위로는 주민의참여와 통제란 지방자치의 참뜻을 살리기 어렵다.
그리고 지자체의 재정자립도가 너무 낮다.전국 평균 자립도는 64%지만 서울등 대도시의 자립도가 매우 높을뿐 道에서는 최하26%,郡에서는 최하 10%밖에 되지 않는 곳이 있을 정도다.
특히 군의 재정자립도가 심각한 수준이다.그렇다고 국세를 지방세화할 경우에는 대부분의 세원(稅源)이 대도시에 편중되어 있어 도농(都農)간 재정적 불균형이 더욱 깊어지는 문제가 있다.
또한 4개 선거를 동시 실시할 태세가 되어 있느냐도 살펴볼 문제다.87년 대통령선거에서 컴퓨터 부정주장을 제기한 야당의 컴퓨터 기피증 때문에 내년 4개 지방선거의 투.개표 사무등 선거 관리는 모두 手작업으로 하게 되어 있다.지금 선관위에서 모의 투.개표 훈련을 하고 있긴 하나 어려움이 많이 드러나고 있다. 더구나 15개 시.도,2백36개 시.군.구에서 의회선거와함께 지방행정의 핵인 단체장 선거를 동시에 치를 때 올 행정공백과 선거결과 2백51개 지자체장이 여야로 갈렸을 때 초래될 행정의 혼선도 심각히 고려할 문제다.물론 남의 나라 도 다 하고 견디는 것을 우리라고 못할 게 뭐냐고 간단히 넘길 수도 있다.그러나 이런 공백과 혼선이 훈련도 안되고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한꺼번에 닥친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안이하게 넘길 일은 아닌 것 같다.그래서 광역단체에서 우선 겪 어보고 그 경험을 토대로 기초단체까지 확대하자는 단체장선거 단계실시론이 나오는 것이다. ***행정공백.혼선 최소화 西유럽과 캐나다.일본(日本)등 지방자치의 선진국에서도 지방의회구성후 자치단체장 직선이 정착되기까지는 20~2백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런 의미에서 기초자치단체장선거 연기론도 무조건 금기시하지 말고 지자체의 구역개편.재정자립도 제고문제와 함께 심도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고 본다.다만 그런 토론은 6共때처럼 일방적인「정치적 결단」이 아닌 입법(立法)을 통해 결말을 지어야 할 것이다. 〈論說主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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