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중·일 관계의 훈풍과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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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중·일 간 최초의 고위급 경제회담이 이달 초 베이징에서 개최되면서 ‘중·일 밀월’을 예고하고 있다. 양국은 환경·에너지절약 기술 분야 협력,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정보 공유에 합의했다. 중국은 연말까지 일본 쌀 150t을 추가 수입하겠다는 성의를 보였다. 양국이 상호 국익을 찾아 협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최대 수입국인 일본에 대해 무역적자를 기록하면서, 대일 수입을 통해 경제 발전을 위한 자본 설비와 기술을 제공받아 왔다. 일본은 대중국 수출 증대에 힘입어 10년 불황을 극복했다. 이제 양국은 서로의 경제 발전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상대가 된 것이다. 자연히 양국은 그동안 영토 차원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던 동중국해 지역에서 해저 자원을 공동 개발하려는 노력까지 기울이고 있다.

그간 중·일 양국은 역사 교과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난징 대학살 등의 문제로 갈등을 일으켜 왔다.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를 둘러싸고 자원 확보를 위한 영토 분쟁도 끊이지 않았다. 이 지역은 미·일이 공동으로 이 해역에 반잠수함기지 건설을 계획하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아울러 중·일은 태평양 공해상의 산호초(오키노도리시마)에 대한 영유권을 두고도 대립해 왔다.

이처럼 그간 ‘경제는 뜨거우나 정치는 소원한(政冷經熱)’ 시기를 경험했던 중·일 간에 훈풍이 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으로 급속히 냉각됐던 양국 관계는 지난해 10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방중으로 화해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일본은 자국 경제 발전을 위해 결코 거대 중국 시장을 놓칠 수 없다. 외교적 차원에서도 중국과의 협력 없이는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에서 지도적 역할 수행이 불가능하다. 중국은 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필요하다. 이뿐만 아니라 심화되는 미·일 군사 동맹과 점점 가까워지는 일·대만 관계를 적절히 견제하기 위해서도 대일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

후쿠다 총리의 방중과 후진타오 주석의 방일을 통한 정상회담이 내년 초까지 예정돼 있어서 중·일 관계는 이제 본격적인 화해 무드로 전환될 것이다. 1998년 장쩌민 주석에 이어 10년 만에 일본을 방문하는 후진타오 주석은 양국의 전략적 호혜 단계가 한층 발전할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으로서는 이 같은 중·일 관계 개선 과정을 동북아 지역 협력을 위한 새로운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현재 중국과 일본은 미국과 함께 미·중·일 삼각 대화를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한국과 북한이 배제된 채 협력 공조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럴 경우 러시아는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미·중·일이 러시아를 공동의 위협으로 간주하는 등 복잡한 구조로 전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일본이 아시아에서 지도적 위치를 점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며, 일본은 중국의 그러한 역할을 곱게 보지 않을 것이다. 이게 중·일 양국이 미국을 매개자로 삼으려는 이유다.

이처럼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한국은 중국과 일본이 신뢰할 수 있는 우방이 되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차분히 대응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함으로써 외교적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 중국이 외교 전략으로 내세우는 ‘구동존이(求同存異)’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되 같은 것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은 ‘코끼리가 싸우든 사랑하든 풀이 짓밟힌다’는 외국 격언을 떠올리며 공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안인해 고려대 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