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국내 유일 여성 골리앗 크레인 기사 손진화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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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대한조선 해남조선소의 손진화 반장이 100m높이의 골리앗 크레인 조종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큼지막한 쇳덩이나 돌덩이를 들어올리는 크레인은 자연스레 남성적 이미지다. 그중에서도 조선소의 골리앗 크레인은 더욱 그렇다. 높이가 100m이상이고 500t 이상의 쇳덩이를 들어올릴 수 있어 흔히 ‘골리앗’이라고 부른다.

전남 해남에 골리앗을 상대하는 여성 기사가 등장해 화제다. 국내 유일의 여성 골리앗 크레인 기사로 알려진 손진화(40) 반장이다. 대한조선 해남조선소 소속.

“처음엔 다리가 후들거리고 아찔했죠. 지금은 육교 위를 지나가는 느낌 정도예요.”
 
일하는 위치는 도크 위 지상 100m 상공의 조종실. 화장실까지 있어 하늘의 작업실 같다.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며 최대 600t 정도의 대형 블록을 옮기는 일을 한다.

“선박 건조 작업은 투박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매우 정교해요.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선박의 중간재인 블록을 야적장에서 건조한 뒤, 도크라고 불리는 곳으로 옮겨 선박으로 조립한다. “특히 엔진을 탑재할 때는 손끝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고 했다. 한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다.

조선소 현장 근무 다섯 달째인 손 반장은 요즘 17만t급 벌크선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한다. 신흥 조선소인 대한조선의 첫 선박이라 그의 손놀림은 더욱 중요하다.

그는 고교 1년 아들과 중학교 3년 딸을 뒀다. 줄곧 전업주부였다가 골리앗 크레인과 인연을 맺게 된 건 2002년. 자녀가 어느 정도 크자 무언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전남 목포중앙직업전문학교 항만장비정비과의 문을 두드렸다. 목포항에서 크레인 기사이자 항만노조원으로 일하는 남편과 같은 직종이라 왠지 친숙해 보였다. 1년 교육을 받고 2003년 2월 골리앗 크레인을 조종하는 ‘천정 크레인 조종사’ 자격증을 땄다.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이 주관하는 자격증. 경험을 쌓으려고 2년 동안 건설기계운전 강사 생활을 한 뒤 2005년엔 충남 당진의 현대제철에 입사해 제강 공장 크레인을 조정하게 됐다.

그러나 목포의 가족이 그리웠다. 그러던 중 올 4월 해남에 대한조선이 큰 조선소를 세운다는 소식을 듣고 전직을 결심했다. 무작정 대한조선 도크 건설현장을 찾은 그녀에게 인사 담당자는 다소 딱딱하게 대했다. 이력서를 받은 인사 담당자는 “크레인 조종은 외주에 맡기기로 돼 있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성을 뽑지 않으려고 완곡히 거절한 것이었다. 손 반장은 “그러면 외주업체 연락처를 달라. 거기에 지원하겠다”고 졸랐다. 이런 성화에 마음이 움직인 회사가 7월 말 손 반장을 채용했다. 대한조선 관계자는 “웬만한 남자보다 낫다는 평판”이라고 전했다.

“100m 높이에서 쫙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머리가 맑아져요. 현장에 오래도록 남아 ‘저 여자, 일 하나는 정말 잘한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
 
서울의 이화여고를 나온 그는 지난해 2월 2년제 목포과학대 자동차과를 졸업할 정도로 향학열도 남다르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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