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11월 15일 메구미 피랍…일본 니가타 '사건 현장'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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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6일 오전 9시. 눈보라가 몰아치는 동해에서 불과 800여m 거리의 니가타(新潟)현 니가타시 요리이(寄居) 중학교.

1977년 11월 15일 이 학교 1학년이던 요코타 메구미(당시 13세.사진)가 북한 공작원에 납치된 지 정확히 30년이다. 체육관에서 배드민턴 연습을 마친 메구미는 오후 6시30분쯤 하굣길에 납치됐다. 니가타시 최대의 번화가인 후루마치(古町)에서 1㎞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직접 메구미가 걸었던 동선을 그대로 따라가 봤지만 사각지대나 외진 곳도 없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납치가 이뤄졌는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게다가 메구미의 하굣길은 650m에 불과했다. 친구 2명과 함께 학교를 나온 메구미가 친구들과 헤어져 혼자 집까지 걸어야 했던 거리는 400m. 인도의 폭은 1m가량이고 길 왼쪽에는 니가타 단기대학과 주택가가 빼곡히 들어서 있는 평범한 거리다. 한 주민은 "당시와 거리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메구미는 집으로 들어가는 모퉁이 골목 부근에서 사라졌다. 목격자는 없었다.

사건 발생으로부터 30년이 지났지만 메구미의 부모나 일본의 수사당국 모두 포기하지 않았다. 당시 메구미가 살던 집에는 이미 다른 집이 들어섰지만 메구미의 부모는 혹시라도 메구미가 돌아올까 봐 이사한 곳의 연락처를 남겨 놓았다.

1977년 11월 15일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메구미가하굣길에 납치된 현장. 메구미는 교차로에서 왼쪽으로 길을 건넌 후 언덕 위집으로 향하다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됐다. [사진=김현기 특파원]

메구미가 납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동해 해변까지는 걸어서 2분 거리. 수사당국은 이곳 도로변의 간판에 '정보제공 부탁'이라는 큰 팻말과 함께 '쇼와(昭和) 52년 11월 15일 이 부근에서 납치된 메구미양과 관련된 어떤 정보라도 좋으니 전해 주세요'란 게시판을 세워 놓고 있었다. 니가타현 경찰본부에는 메구미 납치 사건에 매달려 있는 전담 수사요원이 아직까지 50여 명이나 된다.

30년 전에도 이 사건을 담당했다는 오바타 마사유키(小幡政行) 니가타현 경찰본부 외사과장은 "세월이 지나면서 일반인이야 잊을지 모르지만 피랍 국민을 찾아오는 것은 일본 정부의 의무"라고 말했다. 니가타 현청에서 만난 마루타 히로시(丸田浩) 납치문제 조정실장은 "메구미를 비롯한 납치 피해자들의 송환을 촉구하는 현 단위의 집회를 개최하는 등 끝까지 싸워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납치담당 총리보좌관인 나카야마 교코(中山恭子)도 "북한은 납치된 이들의 정보를 다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공동조사위원회 설치 등의 미봉책은 필요 없다"며 "일본에서 끌려간 피해자들이 전원 돌아와야 이 문제는 해결된다"며 강한 집념을 보였다. 이를 위해 일 정부는 10~16일을 '북한 인권침해 문제 계발(啓發)기간'으로 정하고 대대적인 대외 홍보활동에 나섰다. 납치현장 취재를 중앙일보와 워싱턴 포스트, AFP 등에 주선한 것도 국제사회에 납치 문제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다.

하지만 민간 전문가들 사이에선 다른 의견들도 나오고 있다. 북한에서 정신병동에 입원했던 메구미가 살아 있을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도 최근 대두하고 있다.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대학 교수는 "일 국민은 북한에 대해 경제제재 등 압력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일단 북한과 협상해 보면서 해결책을 찾는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니가타.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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