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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새 保守勢 확산 기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신호등이 붉으면 멈추고 푸르면 앞으로 나간다.그러나 불꺼진 건널목에서 네거리 한복판의 푸른 신호를 그대로 믿고 진행하다가는 종종 낭패를 당하는 수가 있다.차량운전자용 신호를 보고 보행자용 신호등 색깔을 짐작하는 초보적 머리없이 거 리를 거닐다가는 생명을 부지하기 어렵다.
더구나 신호의 색깔을 착각하게 하는,시각장애를 유발하는 심한스모그현상이 있는 경우에 문제의 심각성은 더하다.
미국(美國)과 북한(北韓)간의 핵협상이 그런대로 일단 매듭지어진 이후 곧이어 정부의 對북한 경제협력 제의가 발표되자 기업계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對북한 경협(經協)의 신호등 색깔에 대하여 의견이 일치된 것은 아닌 것 같다.감상주의적 민족주의자들은 한핏줄 동포를 돕는 당위의 사업으로 본다.실리추구형 기업인들은 미국과 일본(日本)의 상인들에게 뒤질세라 황금의 나라 엘도 라도에 이르는 길에 오르듯이 자못 경쟁적이다.대다수 국민들은 남북통일과 관련하여 대북 투자산업이 일종의 트로이 목마(木馬)구실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의 상대는 결코 어리숙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목마를 이용만 하고 불태우려할 것이다.그리고 대북신중론자들은 자칫 범죄집단에 우리의 목을 조를 밧줄을 파는 경솔한 상술(商術)에 제동을 걸기를 바라고 있다.북한당국이 우리정 부의 경협제의를 정면으로 거부한 이상 기업체의 대북한 경협활동에 대한 신호등이 아직은 푸른색으로 확실히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 며칠간 18개 국가원수들이 모여 아태(亞太)지역의 장래를 논의한 亞太경제협력체(APEC)회의가 개최된 자카르타의 거리는 자못 축제분위기였다.선진국과 개도국이 각각 2010년과 2020년까지 무역자유화를 실행하기로한 공동선언도 고무적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이 시점에서 동남아지역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동남아지역이 한국기업에 단순히 원자재와 값싼 임금노동의 공급처이며 동시에 우리의 저질상품이라도 소화할 수 있는 만만한 시장만으로 인식돼 온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지난날 미국.일본.유럽시장만을 중시하고 그곳의 문화 제도만을 동경해왔다.반면 이웃나라들인 동남아지역의 문화에 대해서는 가치부여에 인색했고 그간의 경제성장에 우쭐해 그들에게 인종차별적 태도마저 보이지 않았나 반성해야 한다.
단순히 상품의 수출입만으로 연결되는 경제교류는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경제협력은 단순히 정치지도자들의 주기적 모임으로완성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그리고 그곳을 방문한 우리 정부수뇌들이 깨달아야할 것은 이웃나라 사람들이 한국(韓 國)을 부러워하는 면이 있다면 그것은 정치민주화 못지않게 지난날의 역경 속에서 이룩한 경제발전의 발자취라는 사실이다.지금 동남아는 풍부한 부존자원으로 무장하고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음을 우리는직시해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복잡다기한 사회현상을 간단한 이분법(二分法)으로 단순화하려는 세인(世人)들의 경향에 편승하여,일부 논자들이 자신의 입장을 중립적인 것으로 위장하고 상대방의 입장을극단으로 몰아붙여 짙은 색조로 물들이는 흑백(黑 白)논리가 위세를 부리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진보(進步)와 보수(保守),개혁(改革)과 수구(守舊)라는 용어가 구체적 개념정의도 없이 유행하고 있다.이러한 이분법에는 다분히 의도적인 측면이 있다.보수와 수구보다는 진보와 개혁이라는 단어의 호소력이 강하다.
그러나 용어의 표피(表皮)아래 담긴 정치 경제적 함축의미를 미루어 보아야 한다.단순히 방향을 지칭하는 좌(左)와 우(右)라는 용어가 얼마나 몸서리치는 역사를 함축하고 있는가.일부에서요즘 극우세력의 등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이는 결국 관찰자와 관찰대상간의 상호관계 때문이다.
***중산층 사회균형軸 남의 주장이 극우(極右)로 보일때 관찰자 자신의 입장이 과연 중립적인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정치민주화 물결을 타고 등장한 이른바 진보세력이 팽창하고 있다면 이에 대응하여 보수세력은 나타나게 마련이다.
과거정권과 유착돼 때묻지 않고 권리와 의무를 중시하는 새로운보수세력이 폭넓은 중산층 중심으로 형성되기를 기다린다.이때 우리 사회의 균형발전을 향한 신호등이 푸르게 빛날 것이다.
〈西江大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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