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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 강국이 ‘기능 선진국’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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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한국이 지난달 21일 일본 시즈오카에서 폐막된 제39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주최국 일본을 누르고 종합우승을 했다. 기능올림픽 역사상 이번만큼 힘든 적은 없었다. 일본이 정식 직종 38개와 시범 직종 4개 분야 외에도 주최국 직종이란 명목으로 자신들이 절대 유리한 5개 직종을 추가하는 등 우승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선수는 유럽의 강호는 물론 일본을 모든 분야에서 월등한 기량으로 압도했다. 메달 포인트(한국 88점, 일본 74점), 참가 선수 평균 점수(한국 527.38점, 일본 515.59점), 평균 메달 포인트(한국 2.38점, 일본 1.80점) 등의 결과가 말해주듯 완벽한 승리였다. 당초 우리가 우승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우리는 지난번 핀란드 대회에서 참패한 이후 새롭게 구성한 합동훈련단 시스템 덕분에 우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우승이 우리가 기능 선진국이 됐다는 것을 대변하는 건 결코 아니다. 이번 대회와 우리 전문계고의 실상에 비춰 명실상부한 기능 선진국이 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첫째, 지금과 같이 기초 없는 기술교육 시스템으로는 기능 강국을 유지할 수 없다. 전문계 교육도 더 이상 경제성장 동력이 될 수 없다. 기능올림픽은 과거와 같이 단순 기능만을 겨루는 경기가 아니다. 첨단 산업설비 운용·정비 등 고도의 기술력을 경쟁하는 경기로 발전하고 있다. 따라서 설립 목적마저 퇴색하고 교육 양극화로까지 심화된 우리의 전문교육 시스템으로는 기능올림픽 경쟁은 물론 새로운 산업인력 양성마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이번 대회를 경험한 지도위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그동안 우리 직업교육의 문제는 본질 해결보다 손쉬운 현상 변화에서 해결책을 모색한 데 있다. 그 결과 모두가 외면하는 불량품만을 양산하게 됐다. 이제는 산업인력을 양성하는 제대로 된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지도자의 헌신과 열정은 어떤 교육 인프라보다 중요하다. 이번 대회에는 기능올림픽 역사상 가장 많은 선수와 각국 관람자가 몰렸다. 우리나라의 많은 관계자도 경기장을 방문해 선수들을 지도하고 응원했다. 그러나 불과 20~30분의 시간 할애로 출장 목적을 마치고 경기장을 떠난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경기 기간 내내 경기장에서 선수와 호흡을 같이한 지도자도 있었다. 무엇보다 지도위원들의 헌신과 열정이 금메달리스트를 탄생케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셋째, 전문가 양성 시스템을 구축해 메달리스트와 같은 우수 자원을 국가 발전의 핵심 성장동력으로 키워야 한다. 전문가나 신기술은 저절로 탄생하지 않는다. 숙련된 기술자 양성과 신기술 개발은 우리 생존과도 직결되는 국가 경쟁력이며 세계 일류를 만드는 경쟁력의 핵심이다. 따라서 이번 대회에서 기능 강국의 위상을 과시한 것도 중요하지만 올림픽 메달리스트나 우수 기능인력을 국가 핵심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이 같은 대책은 전문계 고교생은 물론 기능인에게 큰 희망이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명실상부한 기능 선진국으로서 본질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다. 특히 기초가 튼튼한 산업인력 양성 시스템 구축, 지도자 열정,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 등은 갈수록 외면당하는 직업교육을 새롭게 육성할 수 있는 핵심 키워드다. 이런 현실 문제가 제도적으로 정착돼 기능 강국에서 기능 선진국으로 발전하길 기대한다.

서승직 인하대 교수·국제기능올림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