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성급했다-北경협거부 정치권 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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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이 우리의 경협제의를 거부한데 대해 여야는 11일 한결같이 우리정부의 졸속하고 성급한 대응을 비판했다.
여야의원들은 정부에 대북(對北)경협문제에 있어서 속도를 조절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들떠있는 기업들에도 냉정을 호소했다.
○…민자당의원들은 대체로『예상했던 일』(朴定洙.김천-금릉)이라면서 정부의 계산착오를 비판했다.
朴의원은『북한은 핵협상때 처럼 우리 정부를 상대하지 않겠다는입장을 고집하면서 삼성.현대등 대기업을 초청하는 2중적 자세를보이고 있다』면서『정부는 이제라도 대북관계 개선에 매달리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신중한 자세를 강조.
이만섭(李萬燮.전국구)의원은『대북경협은 상대방이 있는 것인데정부가 떠들썩하게 나선 것은 잘못됐다』고 꼬집었고,구창림(具昌林.전국구)의원은『북한은 우리를 인정하지 않는데,우리만 환상적인 그림을 그렸다』고 지적.익명을 부탁한 한 의 원은『대통령이내논 카드를 북한이 발로 차버려 우리만 스타일을 구기게 됐다』면서『떡줄 쪽은 생각도 않는데 우리만 잔뜩 김칫국을 먹고 배탈난 것이 대북정책의 속사정』이라고 답답해했다.
안무혁(安武赫.전국구)의원은『북쪽의 이런 태도는 제네바 北-美협상에서 합의한 남북대화 재개 조항을 북한이 과연 지킬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고 있다』면서 대북경협의 시기상조론을다시 폈다.
이만섭의원은『과거 서독은 동독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조용히도와주었다』고 지적하고『대북정책의 이니셔티브를 추구하는 것도 좋으나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면서 실속있는 대북정책을 주문했다. 구창림의원은『우리가 일방적으로 시혜하는 듯한 대북정책은 실효성이 없음이 드러났다』면서『새로운 대북 제안을 하기보다 경제문제 역시 90년 남북기본합의서의 틀을 부활.가동하는 쪽으로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
○…민주당등 야권(野圈)의 반응은 한마디로 정부가 무지(無知).무능(無能)하기 때문이라고 탓하는 쪽이다.
북한측과의 사전 조율 없이 일방적으로 중대 제의를 해 국가와정부의 체면만 떨어뜨렸다는 것이다.대북직통 채널을 갖고 있지 못한 취약점이 이번에 다시 드러났다고 보고 있다.
이 점에서 문민정부가 과거 정부보다도 훨씬 유리한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자꾸만 꼬여가는 남북관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야권내에는 이런저런 상황들을 들어 정부 통일외교팀의 능력을 의심하는 분위기가 더욱 팽배해지고 있다.
이기택(李基澤)민주당대표는 11일『국민들은 정부가 그런 발표를 하길래 북한과 상당한 물밑 대화가 있는 줄로 믿었다』며「또한번의 졸속행정」으로 규정했다.
박지원(朴智元)민주당대변인은『상대를 파악하지 못하고 이불속에서 생각한 그대로 말해버리는 행정체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그는 그러면서 정부정책에 대한 일방적 매도가 자칫「고소해한다」는여론을 불러일으킬까봐『북한도 달라져야 한다』고 촉구했다.朴대변인은『차제에 북한도 우리측의 경협제의를 거부하고 국가보안법의 철폐를 요구하는등 강성(强性)자세만 유지할 게 아니라 적화통일을 규정하고 있는 노동당 규약과 형법을 고쳐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제의에 앞서 북한측과 물밑 교섭을 가졌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거부당했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외무통일위원인 이종찬(李鍾贊.새한국.서울종로)의원은『북한은 중국처럼 시장경제체제를전반적으로 가미하자는게 아니고 나진.선봉특구등을 운용,제한된 지역에서 경제개발의 단물만 빨아먹자는 방침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처음부터 초점을 잘못 맞추었다는 지적이다.
〈金鉉宗.李相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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