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EYE] 위안화 절상의 정치와 경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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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 21면

중국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는 국제적 압력이 가히 ‘중국 때리기(China bashing)’ 수준이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이 미국과 공동전선을 구축한 가운데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총재 등 EU 고위관리들이 지난주 베이징을 잇따라 방문하며 일련의 공세를 펼쳤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훌륭한 나라는 강한 통화를 가져야 한다”고 중국을 치켜세우며 국력신장에 걸맞은 중국의 국제적 책임을 강조했다.

오는 12일 미국 헨리 폴슨 재무장관의 베이징 방문 때 압박의 강도는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미국 의회는 위안화를 20∼30% 절상하지 않으면 중국의 수입품에 보복관세를 매기겠다고 부시 정부를 다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위안화를 낮게 유지해 엄청난 무역흑자를 누리고, 여기서 쌓은 막대한 보유외환으로 달러를 사들이며 위안화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게 유지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올 들어 9월 말 현재 중국의 무역흑자는 1860억 달러다. 또 중국 인민(중앙)은행은 위안화 가치안정을 위해 매달 200억∼300억 달러씩을 준비자산으로 쌓고 있다. 보유외환 총 규모는 1조 달러, 이 엄청난 축복이 대외적으로는 ‘외교적 악몽’이 될 판이다.

위안화는 2005년 7월 1일 달러당 8.28위안의 고정환율에서 벗어난 이후 지금까지 최
고 12%(달러당 7.4위안)까지 절상됐다. 반면 유로화에 비해서는 6% 이상 절하됐다.

미국 입장에서 절상폭이 계속 불만이고, EU는 중국과의 무역역조 악화 원인으로 값싼 위안화를 지목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20% 이상 절상을 수용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내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박람회 등 국제행사를 앞두고 어느 정도 ‘성의’는 보이겠지만 점진적 조정이란 기본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특히 유로화에 대한 위안화 절하는 중국과 EU 간 문제라기보다는 유로화에 대한 달러 약세에 원인이 있다며 워싱턴에 가 알아보라는 입장이다. 위안화의 저평가보다는 달러화의 고평가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지적이 전혀 엉뚱하지가 않다. 미국 재무부 채권을 열심히 매입하며 달러 안정화에 기여해온 중국으로서는 미국에 대한 서운함도 적지 않다.

환율을 둘러싼 때리기 게임에는 정치적 포퓰리즘과 ‘나쁜 경제학’이 함께 작용한다. 경기침체와 일자리 감소를 중국 위안화 탓으로 돌리는 정치, 그리고 위안화가 절상되면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줄고 수출과 일자리가 늘 것이라는 교과서적 고정관념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의 글로벌 경제에서 이런 정태적(靜態的) 이론은 통하지 않는다.

1970년대 ‘일본 때리기’로 엔화는 달러당 360엔에서 1995년 4월 달러당 80엔까지 4배 이상으로 절상됐지만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는 시정되지 않았다. 일본 경제를 디플레적 침체와 제로금리의 유동성 함정 등 ‘잃어버린 10년’으로 몰아넣었을 뿐이다.

미-중, 미-EU 양자 간 무역수지는 갈수록 무의미해지는 현상도 주목을 끈다. 미국의 경우 중국과의 적자가 늘어나는 만큼 여타 아시아 국가와의 적자가 줄어드는 양상이다. 여타 아시아 국가들이 제품 가공 및 포장 등 생산의 최종단계를 중국의 싼 임금에 의존해 이들이 모두 중국산으로 계상되기 때문이다. 이 비율이 중국 전체 수출의 50%를 넘어섰다.

미-중 간 무역불균형은 중국의 높은 저축과 미국의 낮은 저축 간 불균형의 한 결과로 그 시정은 환율정책의 범위를 넘어선다고 스탠퍼드 대학의 로널드 매키넌 교수는 경고한다. ‘강한 유로화’를 선호하며 하이엔드 제품과 고부가가치 서비스로 올해 중국 수출을 14% 이상 늘리고 있는 독일이 많은 것을 시사한다. ‘나쁜 경제학’과 ‘환율의 정치’에 주도된 중국 때리기가 왕년의 일본 때리기의 재판이 되는 식의 역사의 되풀이는 반길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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