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30년 만에 '가장 강한 분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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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국이 중국과 수교한 지 약 30년 만에 미 국방부가 중국에 가장 강력한 분노를 터뜨렸다. 중국이 21일 아무런 이유 없이 미 항모 키티호크호의 홍콩 입항을 거부한 사건을 두고서다. 이에 따라 양국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데이비드 시드니 미 국방부 아태 부차관보는 28일 워싱턴 주재 중국대사관 무관을 소환해 '깊은 유감'을 표시하며 30분간 공식 항의했다. 제프 모렐 국방부 대변인은 "이는 단순한 항의가 아니라 이번 사건에 대한 불쾌감을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고도의) 항의"라고 강조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도 이날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을 면담하면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 양 부장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답했다고 백악관 측이 전했으나 모렐 대변인은 "만족스러운 설명인지 잘 모르겠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중국의 미 군함 입항 거부는 이달 8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중국을 방문해 양국 간 군사협력을 합의한 뒤 10여 일 만에 발생해 미국의 분노는 더 크다. 미 국방부 전직 고위 관리인 존 택식은 AFP에 "미 국방부에서 양국 관계를 담당해온 30년 동안 국방부가 이렇게 중국에 화를 낸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미 강경대응 배경=중국의 미 군함 정박 거부가 최근 잇따랐기 때문이다. 키티호크호에 앞서 20일 미 해군 기뢰제거함인 패트리어트호와 가디언호가 폭풍을 피하려고 홍콩 정박을 요청했지만 중국의 거부로 기수를 일본 사세보(佐世保)항으로 돌려야 했다. 중국은 ▶1999년 미군의 주 베오그라드 중국 대사관 오폭 ▶2001년 미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 충돌 등 양국 관계가 심각해진 경우를 빼곤 미 군함의 홍콩 입항을 허용했다.

따라서 미국은 최근 중국의 잇따른 입항 거부가 모종의 의도를 품은 전략적 행동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미 정부가 이 기회에 강력한 대응으로 쐐기를 박아야 한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고 미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다.

◆중국은 왜 거부했나=미 국방부가 최근 대만에 최첨단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판매키로 한 것과 부시 대통령이 티베트 독립을 추진하는 달라이 라마를 면담한 데 대한 반발성 조치라는 관측이다. 또 최근 실시된 중국 해군의 대규모 군사훈련을 미 해군에 노출하지 않으려는 조치였다는 설도 있다.

홍콩 명보(明報)는 "중국 해군의 동해와 남해 함대가 최근 대만 해상봉쇄를 가상한 대규모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다"며 이같이 추측했다. 미국의 강경한 항의에 중국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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