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80년의 언론통폐합조치 절대부패 낳은 言路폐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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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신문협회와 방송협회는 80년11월 각각 임시총회를 열어「건전언론 육성과 창달을 위한 결의문」을 발표했다.곧 이어 놀랄만한조치가 단행됐다.신문사가 겸영(兼營)하고 있는 동양방송과 동아방송등을 KBS에 통폐합하고,지방신문을 한 도 (道)에 하나로정리하며,통신사를 단일화하는 것이 그 핵심이었다.형식적으로 자율 결의를 거쳤지만 이는 그야말로 기만이었다.언론사는 신군부의강압에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결의문은 이 조치가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하고 복지의 터전을 이룩하는 역사적 과제 앞에서 선도의 역(役)을 다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러나 언론 통폐합이 정권의 정통성이나국민적 지지 기반이 취약한 신군부가 언로(言路) 를 장악할 목적이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정도였다.
사실 신문사의 정리는 일제 이래 지배 권력이 다반사로 해왔다.일제는 1910년 우리 나라를 병탄하자 민족지를 모두 강제 폐간했다.1940년 이후에는 중앙지를 없애고 지방지도 일도일지(一道一紙) 원칙에 따라 정비했다.박정희(朴正熙) 군사정권도 정변 직후 시설기준 미달을 이유로 언론사를 모조리 없앤 적이 있다.이런 일련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총독부와 군사정부는 언로를틀어쥐었다.신군부 역시 같은 목적으로 언론사를 대대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신군부가 단행한 조치 가운데 신문사의 방송 겸영을 해체한 것은 전례 없는 일로,기존 朴정권 언론정책의 기본 틀을 깬 것이었다.朴정권은 집권초기부터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이중적인 정책을 폈다.
한편으로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 비판 기능을 강력히 통제했다.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론 육성책을 통해 언론사의 경영 기반을 다져 주고자 했다.일간 신문사에 주간지나 잡지의 발행을 허가하고 방송을 겸영하게 하는등 여러 정책 지원을 했던 것이다. 물론 인쇄와 방송 매체를 한 언론사가 함께 운영하는데따르는 문제점이 있다.신문협회와 방송협회가 채택한 결의문에서 지적한 대로,언론의 집중은『민주적 여론 형성을 저해』할 우려가있다. 하지만 당시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절대 권력이 언론을 장악,언로를 원천봉쇄한 것이었다.신군부는 부차적인 문제인 거대언론의 여론 왜곡을 내세워 휠씬 근본적인 문제인 절대 권력의 언론 장악을 더욱 강화하고 말았다.
신군부는 언론 구조를 대대적으로 해체함으로써 절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이런 측면에서 언론 통폐합은 단기적으로 신군부의 권력 안정에 기여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언로의 폐쇄는 절대 권력의 절대 부패를 불러왔다.전두환(全斗煥)대통령이 퇴임 후 치른 불명예는 이런 의미에서 스스로 예약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언론에 대한 정부의 기능은 크게 네가지로 나누어진다.첫째가 규제 기능이다.정부가 실정법에 의해 언론을 통제하는 일이 이에해당한다.둘째는 조정 기능이다.정부는 언론사와 언론사,언론 산업과 타 산업 간의 이해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
셋째는 조성 기능이다.정부는 언론이 경영의 안정을 기하면서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넷째는 참여기능이다.정부는 공익성이 높지만 채산성이 낮아 민영 언론이 맡기 어려운 사업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
그동안 5공을 비롯한 정부의 언론 정책은 위의 네가지 가운데규제 기능에 치우쳐왔다.이제 정부의 언론 정책은 나머지 다른 차원으로 그 역점을 옮겨가야 한다.규제 기능은 정부보다는 사회와 언론 소비자에게 맡겨야 한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대중은 언론을 감시할 때 우리는 깨끗하고 민주적인 사회를 얻게 된다.언론 통폐합이라는 억압의 역사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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