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독일이 꽉 잡은 레이저 가공기계 토종 기술력으로 당당히 맞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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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재 한광 사장이 레이저 가공기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뒤로 보이는 것이 금속판을 절단하는 레이저 가공기계다. [사진=김형수 기자]

일반적으로 작은 부품이나 기계를 만들려면 먼저 금형을 제작하고 이를 프레스에 걸어 찍어 낸다. 하지만 금형 없이 다양한 부품과 기계를 찍어 낼 수 있는 기술이 있다. 레이저를 이용하면 된다. 레이저 빔을 컴퓨터로 제어해 쏘면 금속이나 플라스틱 등의 소재로 어떤 형태의 제품이든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레이저 가공기계다.

한광은 이런 레이저 가공기계를 만든다. 국내에선 유일하다. 국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세계 레이저 가공기계 업체 중 10위권에 든다. 이 기계는 원래 독일과 일본 등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업체가 없다. 첨단 기술이 필요해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시장 규모는 크지 않지만 수요는 안정적이다.

계명재(49) 사장이 이 분야에 뛰어들기로 마음먹은 것도 바로 이런 산업의 특징 때문이었다. 그가 레이저 기계를 처음 접한 것은 미국 뉴욕시립대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마친 1990년 초, 미국에서 열렸던 한 기계 전시회에서였다. 그는 학부에선 마케팅, 대학원에선 금융을 전공했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는 사업가가 되고 싶어 하던 터였다.

“레이저 가공기계는 당시 미국에서도 막 시작하는 분야였어요. 출발선에서 같이 뛰면 제대로 경쟁할 수 있을 것 같았죠.”

한국으로 돌아와 그는 사업계획서를 들고 과학기술처(현재 과학기술부)를 찾았다. 첨단 산업이었기 때문에 정부에서 개발자금 1억여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이를 밑천으로 삼아 인천시 효성동에서 165㎡의 공장을 빌려 회사를 차렸다. 90년 5월이었다. 회사 근처에 얻은 월셋방에서 직원 4∼5명과 칼잠을 자면서 개발에 몰두했다. 외국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한국기계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가며 기계를 설계했다.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전송장치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레이저가 나오지 않거나 걸핏하면 기계가 섰다. 1년여 동안 씨름하고 나니 ‘물건’이 나왔다. 당시 삼성항공·대우중공업·금성전자 등 대기업 계열사들도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91년 첫 제품을 내놓은 뒤 2년여 만에 이 회사는 국내 판매 1위에 올라섰다.

“제가 엔지니어 출신이 아니다 보니 ‘언제 망하나 보자’는 게 업계 반응이었어요. 하지만 전공자가 아니어서 오히려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에요.”

이후 대기업 계열사들은 레이저 가공기계 사업을 접었다. 끊임없이 기술을 개발해야 하지만 시장이 작아서 수익성은 높지 않아 대기업이 하기엔 적절한 분야가 아니었다. 한광은 93년에 부설 ‘레이저연구소’를 세우고, 신제품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코바 시리즈’를 내놓고 시장에서 인지도를 높였다. 94년에는 당시 상공부에서 ‘유망 선진기술 기업’으로 지정했고, 95년에는 벤처기업상을 받았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닥쳤다. 견디기 힘든 시절이었다. “국내 수요가 증발했죠. 리스로 판 제품까지 회수하게 되면서 새 기계에다 중고 기계까지 쌓여만 갔습니다.”

상황은 점점 나빠졌다. 아무리 버텨도 앞이 보이지 않아 98년 8월 직원의 30%를 정리해고했다. 외환위기의 탈출구를 찾기 위해 수출이 급했다. 이에 그는 98년 9월 미국 시카고에 지사를 열었다. 그러나 한국의 작은 업체 제품을 어떻게 믿느냐는 반응이었다. 이를 불식하기 위해 지사를 세우자마자 애프터서비스 조직을 먼저 구축하고 이를 미국 딜러들에게 알렸다. 그 덕분인지 미국에서는 그럭저럭 장사가 잘됐다.

그러던 중 스위스 바이스트로닉이 회사에 3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93년부터 국내에서 제품 판매를 대행해 줬던 회사였다. 이 회사는 어려움에 처한 회사 사정을 고려해서인지 팔리지 않았던 자기 회사 제품도 회수해 줬다. 숨통이 트였다. 그러곤 곧바로 회한이 밀려왔다. 그는 “조금만 더 버텨 이렇게 사정이 좋아질 줄 알았었다면 정리해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사업 하면서 가장 마음 아픈 부분”이라고 말했다.

99년부터 상황이 나아졌다. 국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기술을 가다듬는 데 더욱 노력했다. 이 무렵 에코 시리즈를 내놓았다. 이는 효자 상품인 동시에 한광의 기술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2004년 0.8㎜의 연강을 분당 15m까지 자를 수 있는 ‘에코3’ 모델을 미국 시카고 공작기계 전시회에 선보였다. 이는 동일 출력 대비 세계 최고 속도를 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덕분에 2005년엔 매출의 20% 정도를 수출에서 벌어들였다. 지난해는 후속 모델로 FL 시리즈를 내놨다. 이 제품도 잘 팔리면서 올해는 2000만 달러 수출탑도 받게 됐다. 수출 비중도 매출액의 40%로 올랐다. 그는 “2010년엔 매출액 1000억원을 달성해 세계 3대 레이저 가공기계 업체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글=하현옥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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