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체납, 신용불량자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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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내년 6월부터 주차 위반 같은 일로 행정기관에서 과태료를 내라는 통지를 받고도 계속 내지 않으면 신용불량자 취급을 받게 된다. 과태료를 내지 않은 사실이 신용정보회사에 알려져 은행에서 돈을 빌리거나 신용카드를 쓸 때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다.

또 과태료를 기한 내에 내지 않으면 최대 77%까지 가산금이 붙고, 최악의 경우 30일까지 구치소에 수감될 수 있다. 대신 과태료를 일찍 내면 깎아 준다.

국회는 23일 본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의 '질서위반행위 규제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다음달 공포된 뒤 내년 6월부터 시행된다. 과태료 체납에 대한 벌칙은 내년 6월 이후 발생하는 과태료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현재는 과태료 체납 심각=지금까지는 주차 위반을 하거나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는 등 법에서 정한 질서를 지키지 않아 과태료 처분을 받아도 제대로 내는 사람이 적었다. 기한 내에 과태료를 내지 않아도 가산금이나 다른 불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차.전용차선 위반 같은 자동차 과태료는 폐차할 때까지 내지 않아도 됐다.

전국 시.군.구청장 협의회에 따르면 국민이 과태료 처분을 받고도 내지 않은 돈이 전국적으로 3조3955억원(올 2월 말 현재)이나 된다. 징수율은 15.3%에 불과하다.

◆내년부터 강화되는 벌칙=내년 6월부터 법을 어겨 과태료 처분을 받으면 바로 내는 게 좋다. 일찍 내면 과태료의 일부를 깎아준다. 액수가 많으면 나눠낼 수도 있다.

그러나 기한 내에 내지 않으면 가산금이 붙는다. 처음에 5%, 이후 한 달마다 1.2%씩 추가된다. 가산금은 최대 77%까지 붙을 수 있다.

동시에 과태료 체납 사실을 신용정보회사에 알리겠다는 통지를 받는다. 그래도 과태료를 내지 않으면 신용정보회사에 개인의 체납 정보가 넘어간다. 그러면 은행.카드.보험사 같은 모든 금융회사가 이 사실을 알게 돼 금융거래 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사업을 하다 과태료를 내라는 통지를 받고도 1년 이상 내지 않고 금액이 500만원, 횟수가 3회 이상이면 해당 사업의 허가나 면허가 취소된다. 과태료를 낼 능력이 있으면서도 1000만원 이상을 1년 넘게 내지 않으면 최장 30일까지 구치소에 수감될 수 있다.

과태료 체납에 대한 처벌 조항은 내년 6월 법 시행 이후 질서를 어겨 과태료 처분을 받는 경우에 적용된다. 그 이전에 과태료 처분을 받았으면 현행 규정에 따른다.

그러나 과태료를 걷는 행정기관의 입장에 치우쳐 과태료 체납자에 대한 처벌이 지나치게 세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려대 하태훈(법학) 교수는 "신용정보 제공 같은 조항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해 과잉금지에 해당할 수 있는 데다 과태료 체납을 이유로 구치소에 가두는 것도 지나치다"고 말했다.

주정완 기자

◆과태료와 범칙금=법에서 정한 질서를 어긴 사람에게 벌칙으로 물게 하는 돈. 과태료는 주로 시.군.구청 같은 행정기관이, 범칙금은 경찰이 부과한다. 주.정차 위반이나 쓰레기 무단 투기 같은 경우에는 과태료를 물고, 경범죄를 저질러 경찰에게 단속되면 범칙금을 문다. 교통법규를 어겼을 때는 상황에 따라 범칙금과 과태료가 달라진다. 속도 위반이나 차선 위반 등으로 경찰에 직접 단속되면 범칙금을 내야 하지만 무인 카메라에 단속되면 경찰은 운전자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1차로 차주에게 범칙금 통지서를 보낸다. 이때 차주가 범칙금을 내지 않으면 1만원이 할증된 과태료로 전환돼 최종적으로 차주가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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