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눈뜬 ‘골리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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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서장훈” “서장훈”을 외치는 팬들의 환호에 얼음장 같던 그의 얼굴은 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년처럼 붉게 타올랐다. 그리고 그는 두 팔을 번쩍 들어 팬들의 환호를 가슴에 안았다.

프로농구 전주 KCC의 서장훈(33·사진)은 21일 홈인 전주체육관에서 열린 창원 LG전에서 22득점·9리바운드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이 짜증 많고 심술궂은 거인에게 승리보다 값졌던 것은 팬들의 사랑이다. 원래 서장훈은 야유를 받는 선수다. 그가 공만 잡으면 야유가 나온다. SK와 삼성에서 지낸 9시즌 동안 원정경기에서는 물론 홈에서도 야유만 받았다.

서장훈은 “이런 응원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이후 5년 만에 처음 들은 것 같다”며 웃었다.

서장훈(2m7cm)은 키가 크고 농구를 잘한다. 상대 팀에서는 두 세 명씩 달라붙어 팔을 치고, 옷을 잡아당기고, 다리를 걸고, 심지어 팔꿈치로 때리고 꼬집는다. 그가 병원 신세를 진 것도 여러 번이다. 목에 보호대까지 차고 다닌다.

그래도 그는 동정받지 못했다. ‘건방진 골리앗’이기 때문이다. 팬들은 키 작은 다윗이 나타나 그를 무너뜨려주기를 기대한다. 부잣집 아들인 서장훈보다 장애인 부모를 둔 김주성(원주 동부)이 이기기를 원한다.

물론 그에게도 잘못이 크다. 심판에게 손가락질하고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동료를 비난했다. 서장훈은 “이기고 싶었고 외톨이가 되지 않으려는 마음에 동료와 얘기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팬들의 사랑을 받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KCC로 온 것도 단순히 이상민과 뛰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이상민과 뛰면 야유를 벗어나 연세대 시절 받았던 그 환호를 다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무뚝뚝하고 사나워 보이지만 그의 마음은 이런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

서장훈은 마음이 차가운 선수가 아니다. 그는 최근 전주 지역 불우 학생을 위해 1000만원을 기부했다. 연봉 4억원을 받는 그이기에 큰 돈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다른 선수와는 좀 다르다. 그는 장학금을 받고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청소년을 찾아야 한다며 직접 대상 학생을 골랐다.

KCC 정찬영 운영팀장은 “장학금 전달식에서 학생을 처음 보면 서먹해서 안 된다며 미리 저녁을 사줄 정도로 배려하는 선수다”고 말했다.

서장훈에게 이번 시즌은 열 번째 시즌이다. 그는 이제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외로운 골리앗에게 우승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랑이었다.

“선수 생활 마지막까지 야유를 받으며 떠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전주=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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