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2000>3.바퀴-통나무 굴림대가 타이어로 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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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둥근물체가 다른 어떤 형태의 물체보다 잘 움직이는 것은 미끄럼마찰 대신 굴림마찰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자세히 말하면 전체크기에 비해 바닥과 맞닿은 면적이 작은 물체일 수록 스스로 중력때문에 넘어지려는 힘을 갖고 있어 이를 움직이게 하는데 힘이 적게 드는데다,원(圓)은 전체모양이 똑같아 연속동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류는 과거 이같은 물리학적 지식이 없었지만 구르는 돌.과일하나도 무심코 보지 않는 관찰력과 기억력으로 문명의 총아인 바퀴를 탄생시켰다.
바퀴에 대해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3천5백년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유역에 거주하던 슈메르인의 전쟁벽화에서 나타난 전차용 통나무바퀴다.
그 이전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짓기위해 통나무들을 바위밑에 끼워 바위를 움직이기도 했지만,모래가 많은 지형때문이었던지 바퀴개발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슈메르인은 특히 통나무 원판하나로 바퀴를 만들면 나무결에 따라 쪼개지기쉽다는 점을 알고 2~3개의 통나무원판을 붙인 바퀴도 개발했는데 이는 오늘날 합판의 원리와 똑같다.
기원전2천년께는 전투에 능했던 아시리아인이 전차의 기동력을 높이고자 통나무대신 나무테두리에 나무살을 박아 바퀴무게를 가볍게한 오늘날의 바퀴형태를 만들어냈고 이후 짐승가죽.철판등을 테두리에 붙인 바퀴들이 차례로 등장했다.
이중 서유럽의 겔트인은 바퀴구멍에 바퀴축이 그대로 끼어있어 발생하는 마찰열과 소음방지를 위해 축 주변에 수많은 소형 나무원통을 끼워넣은,이른바 베어링 장치를 최초로 개발했다.
고대의 이같은 발명은 15세기까지도 큰 변화없이 그대로 이어지다 1490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현재의 자전거바퀴 형태와 같은 수십개의 가는 철살(스포크)로 바퀴를 지탱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유럽의 광산개발이 본격화된 17세기부터는 광부들이 굴곡이 심한 터널바닥에서 수레를 끌기위해 나무판을 바닥에 깔았는데 1769년 영국인 다비가 이 방법을 레일로 발전시켰다.
타이어는 1839년 미국인 굿이어가 실험도중 유황에 적신 생고무를 난로에 떨어뜨려 태웠는데,이고무가 딱딱하면서도 탄력이 있는 상태로 변하는 현상을 발견한 데서 시작됐다.그의 발견으로1846년 영국인 헨콕은 자전거.자동차의 바퀴테 두리에 열처리고무를 씌운「솔리드타이어」를 개발했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가죽대신 고무를 씌우는 수준에 불과했고 공기를 주입하는 진정한 의미의 타이어는 1888년 아일랜드의 수의사였던 던롭이 개발했다.그는 자신의 아들이 딱딱한 바퀴의 자전거를 타다 다치는 일이 많아 고민중이었는데 어 느날 아들이축구공에 바람을 넣어달라는데서 착안,고무호스로 바퀴를 둘러싼 타이어를 개발했다.
던롭의 타이어와 관련,연세대 김천욱(金天旭.기계공학)교수는『그뒤 공기가 스프링역할을 해 승차감이 좋아지고,노면의 요철을 흡수함으로써 차체의 상하운동으로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에너지를 줄여 속도까지 빨라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1898년 미국의 슈레이더가 개발한 밸브코어(공기주입장치),프랑스 미쉐린형제의 바퀴탈착장치(손의 힘만으로 바퀴를 빼고 끼우는 장치),1907년 호머튼社의 재생타이어,1933년 독일 바펜社의 합성고무타이어등이 잇따라 개발되면서 타이어 산업은 급성장하게 됐다.
국내의 타이어산업은 1941년 日本브리지스톤사가「조선다이야공업사」를 설립한 것이 최초이나 당시 中日전쟁때 주로 군수물자를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본격적인 산업은 6.25한국전쟁이후 조선다이야가 한국타이어로재건되고 60년대초 호남갑부 박인천(朴仁天)씨가 자신의 광주여객버스용 타이어를 만들기 위해 삼양타이어(現금호타이어)를 설립하면서 본격화됐다.이후 자동차산업의 급성장과 더 불어 타이어산업도 날로 번창,지난해에는 전세계 타이어업체의 매출액순위중 금호타이어가 10위,한국타이어가 11위를 각각 차지했다.
〈李孝浚기자〉 ***다음회에는 사진기편이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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