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프리카로 농업개방 맞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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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수확을 했는데 팔 데가 없었어요. 아무 곳에나 버리지도 못하고 모두 묻었죠."

1994년 말 첫 수확할 때만 해도 파프리카는 천덕꾸러기였다. 한국 파프리카 자조회 조기신 부장은 "앞이 막막했다"고 당시를 기억한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3년 한 해 동안 파프리카는 5천1백만달러(약 5백90억원)어치가 수출됐다. 신선 농산물 가운데 처음으로 연간 수출액 5천만달러를 돌파한 것이다. 주요 수출 지역인 일본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65%로 3년째 1위다. 파프리카 재배의 원조격인 네덜란드(점유율 20%)도 따돌렸다.

파프리카는 단맛이 나는 고추로 모양은 피망과 비슷하나 가격은 3배 이상 비싸고, 비타민과 철분이 많다. 농림부에 따르면 파프리카 농가들은 평균 1천5백평 정도를 경작해 농가당 연간 매출이 2억원에 이른다. 소득은 매출의 30~40%인 6천만~8천만원쯤 된다. 꽤 짭짤한 소득원이다. 농산물 시장 개방을 앞두고 걱정이 많은 농민에게는 자신감을 줄 만한 희소식이다.

◇어떻게 성공했나=잔류 농약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안전 관리와 농가 공동기금을 만들어 기술개발과 교육에 재투자한 것이 주효했다. 파프리카 농가들은 지난해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지난해 4월 일본 검역당국은 한국산 파프리카에서 잔류 농약이 많이 검출됐다며 전수(全數) 검사를 실시키로 했다.

전수 검사를 하면 통관에만 1주일 이상이 걸려 신선도가 떨어지고, 값이 20~30% 깎인다. 농민들은 머리를 맞댔다. 잔류 농약을 줄이기 위해 출하 전 날짜별로 사용 가능한 농약 종류를 정했다. 또 농약 사용일지를 반드시 기록해 점검했다. 이런 규정을 지킨 농가만 정부가 발급한 등록증을 받을 수 있었다. 일본 측도 이런 노력을 인정해 등록증이 있는 농가에서 생산한 파프리카에 대해선 지난해 10월부터 '선 통관.후 검역'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3일이면 통관이 가능해져 신선도가 높아지면서 수출이 2002년보다 45%가 늘어났다.

◇농가 연합=2000년 설립된 자조회는 수출액의 1%를 공동 기금으로 만들었다. 정부 지원금까지 합쳐 매년 4억원 정도의 기금을 운영하고 있다. 이 돈으로 네덜란드 전문가를 초청해 교육도 받고, 일본 현지 홍보와 시장조사도 했다.

농림부 관계자는 "일본의 파프리카 시장이 지금보다 6배 정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며 "점유율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선 고유 브랜드 개발과 적극적인 현지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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