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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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떠난 자와 남는 자(37)날 위하는 마음에서,덕담하듯 좋은 소리로 한 마디씩 던지는 거지요,그렇지만 그게 어디 그렇나요.오며 가며 이 사람 저 사람이 한 마디씩 하지만 결국은 그게 저한테 돌아올 때는 욕이 된답니다.
둘째 며느리 구박한다더라.동서간 사이가 나쁘다더라.남들이야 하기좋은 말로 하는 거지만 마지막에 가면 그게 욕이 되어 제게돌아옵니다.제가 철딱서니 없이 그런 소리를 지어내 떠들고 다닌꼴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겠지요.그게 다 결국은 제 덕없음이고 철없음이겠지요.
보낼 수도 없는 이런 글들을 당신에게 쓰기 시작한게 벌써 언제인지 모릅니다.그저 마음 하나로,당신이 안 계신 사이를 저 이렇게 살았습니다 하는 뜻으로 적어 온 글들인데,요즘은 이런 것조차 다 부질없는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들어서 어디다 무슨 재미를 붙여서 사나 싶답니다.
어려서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말이 생각납니다.오자탈주(惡紫奪朱)니라,그런 말씀을 들려주신 적이 있답니다.소인이 현자를 욕 보인다는 뜻이니,자색이 오히려 붉디 붉은 주색을 더럽힌다는 그런 말씀이었답니다.
무슨 독한 마음이 있어서가 아닙니다.가슴에 맺힌 게 있어서는더더욱 아닙니다.말이 말을 낳는다고,다만 한 지붕 아래서 한솥밥을 먹는 사람끼리라도 서로 위하고 감싸도 모자라는 게 많은 건데 이런 저런 말샅에 제가 걸리고,듣도 보도 못한 맹랑한 소리에 제가 올려지니,세상에 그것처럼 견디기 힘들고 어려운 일이없는 거랍니다.
이런 게 다 뭐겠어요.당신 돌아오시면 되는 거고,이런 나날을살았소 한들,속좁은 여자라며 야단이나 치실 당신임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제 마음 제가 바로 세우자고,겨우 그 생각 하나로 이런 것들을 적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상여 뒤에 약방문이라는 말이 있듯이,당신이 돌아오시고 나면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그날을 기다리기가 힘들어서 이러는 거 아니겠어요.
쓰던 글을 밀어놓고 은례는 아이를 돌아보았다.꽃이라면 저럴까.새라면 저럴까.잠들어 있는 아이의 모습이 무엇에 찔리듯이 가슴에 와 닿아서,은례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래,그래.네가 있어서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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