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아시아의고동>인도 8.부족한 인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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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봄베이의 특급호텔 객실에는 격에 어울리지않게 항상 양초가 준비돼 있다.언제 정전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양초도 새 것보다 절반정도 타다남아 몽땅해진 것이 많다.정전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만일의 사태」가 아니라 수시로 일어나 는 「실제상황」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인도에서 활동하는 외국기업인들에게는 부족한 인프라가 큰 부담이 된다.
우선 전력의 경우 자체발전기를 지닌 수출가공구(EPZ)를 제외하고는 전국적으로 골고루 모자란다.인도 정부의 전력사업기획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평소에는 6.7%,성수기에는 12.6%가 모자란다고 한다.또 경제성장에 따라 전력수요도 늘 어 앞으로는14~28%정도 부족해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전기의 질도 문제다.전압이 갑자기 낮아졌다,높아졌다 변덕을 부리는 바람에 예민한 계측기기.제어기기는 금방 고장난다.꽤 튼튼하다고 하는 미제(美製)가전제품도 고장이 잦아 주 재원 부인들의 불만이 대단하다. 전화사정은 더 나쁘다.인구가 9억이 넘는데 전화는 7백만회선 뿐이다.1백명당 0.8회선 꼴이다.
보급도 제자리 걸음이다.전화를 신청해놓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만 3백10만명이 넘는다.이미 가입해있는 사람이 전화를 팔거나죽어야 전화를 받을 수 있다보니 전화 놓는데 몇년씩 걸린다.성질 급한 사람은 돈으로 해결하기도 한다.
『순서대로 기다리면 빨라야 3년이다.기다릴 수 없는 외국기업들은 전화 한대에 1천~1천5백달러정도 웃돈을 내고 두달만에 놓는다.』(한국중공업 봄베이지사 金基范부장) 도로사정도 문제다.지도에 나온 하이웨이(고속도로)만 믿고 초행길을 가다가는 미아가 되기 십상이다.하이웨이라는 것이 우리의 3류 국도수준이다.그래도 지도에는 굵직한 실선으로 당당하게 그어져 있어 『설마이 길이 그 길일까』하고 다른 길을 찾아가다는 그만 헤매고 만다.또 비만 오면 웅덩이가 푹푹 패어 자동차가 다니기 힘들 지경이다.중앙선도 지워져 자동차들이 한번 엉키기 시작하면 대책이없다. 그나마 있는 인프라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反인프라적 요소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어디에서나 어슬렁거리는 소떼다.봄베이를 제외한모든 지역에서 소떼는 도시의 일부다.보도든,차도든 가리지 않고눌러 앉으면 사람과 자동차가 피해가야 한다.
러시아워때는 더 가관이다.소가 길을 막고 누우면 도로전체가 마비된다.소때문에 지각도 잦고 화물수송시간도 늦어진다.주문한 물건이 늦게 도착해도 『소때문에…』라는 한마디면 더이상 다그치지도 못한다.
또 갑자기 튀어나오는 소때문에 교통사고라도 나면 보험처리도 어렵다.「천재지변으로 인한 사고」라는 이유로 보상해주려고도,바라지도 않는다.
겁나는 질병이 많은 것도 기업활동에 큰 지장을 준다.병이 한번 크게 돌면 주재원.바이어.근로자 모두 활동을 멈춘다.최근의폐(肺)페스트가 대표적인 예다.페스트가 돌기 직전에는 말라리아와 비슷한 뎅구피버가 사람들을 괴롭혔다.우리 주 재원들도 여러명이 걸려 보름정도 병원신세를 졌다.
㈜대우 봄베이지사의 정영환(鄭英煥)부장은 『매년 우기(雨期)가 끝나면 직원과 가족들이 돌아가며 한차례씩 병치레를 하곤 한다』고 말했다.
[봄베이=南潤昊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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