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 100 - 90점보다 91 - 91 - 91점이 우수학생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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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고3 교실의 분위기는 혼란스러웠다. 가채점으로 자신의 점수는 알지만 본인이 몇 등급에 속하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설 입시학원에서 집계한 예상 등급 구분점수(등급 컷)가 나왔지만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다.

올해 첫 시행된 수능 등급제는 수능을 자격고사화해 내신 반영 비중을 높여보려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포함한 주요 대학들은 정시모집에서 수능 등급별 가중치를 줘서 학생들을 선발한다. 고려대.건국대.한국외대는 정시모집 가운데 일부를 수능 등급만으로 뽑을 계획이다. 그러나 수험생들은 12월 12일 수능성적이 발표되기까지는 자신의 등급을 알 수 없다.

◆한 문제로 등급 갈릴 수도=이날 오전 10시 서울 도곡동 숙명여고 3학년 교실에서 만난 김모(19)양의 눈은 잔뜩 충혈돼 있었다. 김양은 학급에서 학생부 성적으로는 1등이다. 그는 "외국어에서 2등급이 나올 거 같다"며 "이 점수로 어디를 가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언어.수리(나)에서 모두 만점(100점)을 받았다. 하지만 외국어 성적이 좋지 않게 나오게 될 경우 원하는 대학에 가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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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 서울 만리동 환일고 3학년 교실. 이동준(문과)군은 "시험을 잘 봐 총점이 올랐다. 그런데 등급은 떨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이군은 수리(나)와 외국어에서 만점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언어에서 91점이 나왔다. 사설 입시학원 예측에 따라 다르지만 언어영역 1등급 커트라인은 91~92점이다. 언어에서 2등급 가능성이 있다. 이 군은 "어려웠다는 수리(나)에서 만점을 받은 것이 허탈하다"고 말했다. 수리(나) 1등급 커트라인은 92~94점으로 예측되고 있다.

학부모와 재수생들은 입시설명회를 찾았지만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날 서울 강남구 진선여고 강당에서 열린 입시설명회에는 학부모와 재수생 등 2000여 명이 몰렸다. 재수생 이모(19)양은 "언어 100점과 92점이 어떻게 똑같은 1등급이냐"며 "완전한 역차별"이라고 말했다. 이양은 또 "등급제 수능은 성적표가 나올 때까지 수험생의 피를 말리는 제도"라고 불평했다.

◆'오리무중 수시 2학기=수능 등급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수능 다음 날부터 원서 접수를 하는 수시 2-2 지원도 '안개 속'에 빠졌다. 수능 성적이 생각만큼 나오지 않을 경우 수험생들은 정시 지원 대신 학생부 성적과 대학별 고사로 뽑는 수시 2-2 지원으로 몰렸다. 그러나 등급 문턱에 선 학생들은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어 지원을 망설이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수시 2학기 지원을 해 놓은 뒤 수능을 잘 본 학생들은 수시 전형을 포기하고 정시 지원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혼란스러운 진학 지도=휘문고 임찬빈(진학부장) 교사는 "예년에는 수능 뒤 오후 2~3시면 상위권 학생들의 경우 합격권 대학.학과까지 예측이 가능했다"며 "올해는 모든 것이 백지 상태라 진학지도에 힘이 든다"고 말했다. 문제 한 개 차이로 등급이 달라져 버리면 지망 가능한 대학군(群)이 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재수생 김모(19)양은 "재수를 했는데 결국 문제 하나 차이로 등급이 갈려 지원 대상의 범위가 서울이냐 수도권이냐로 달라질 수 있다"며 "그런데 성적발표 때까지는 기다릴 수밖에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등급제 누가 도입했나=수능 9등급은 2002학년도부터 총점과 소수점을 없애는 대안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의 9등급제는 현 정부 들어서면서 수능의 역할을 축소하는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전성은 위원장과 청와대 인사들은 수능 점수를 아예 없애고 등급제 도입을 검토했다. 혁신위원회 백서에는 '노무현 대통령은 9등급이 아닌 7등급을, 9등급제를 도입해도 1등급 비율은 7%(현재 4%)를 희망했다'고 돼 있다. 이에 대해 안병영 당시 교육부총리는 "변별력 상실로 큰일이 벌어질 수 있다"며 반대했다. 결국 2004년 안병영 전 부총리는 수능 9등급제 개편안을 확정했다. 당시 대학국장은 재정경제부 출신의 이종갑(현 삼화왕관 대표이사 부사장)씨였다.

배노필.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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