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칼럼

바람·온도·고도와 골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골프에서 버디의 원뜻은 ‘훌륭한·신선한’이라는 의미이고, 보기는 에둘러 말하면 영화 제목처럼 “캐치 미 이프 유 캔”(잡을 수 있으면 나 잡아 봐라)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린초등학교 시절부터 친한 친구 사이인 버디 김과 보기 최는 버디와 보기를 많이 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키가 180㎝인 버디 김의 드라이버 비거리는 약 250야드, 7번 아이언은 150야드다. 키는 비슷하나 비거리가 약간 짧은 보기 최는 버디 김과 라운딩을 하면 꼭 2∼3타 차이로 진다. 그러던 어느 날 보기 최가 드디어 버디 김을 2타나 이길 수 있었다. 버디 김은 우직한 골프 매니어인 데 반해 보기 최는 실력은 뒤지지만 지혜로운 친구다. 뒷바람이 심하게 분 그날 보기 최는 바람을 고려해 드라이버와 아이언의 스윙 크기와 론치 각을 조절했다. 반면 버디 김은 그저 연습장에서 하던 식으로 샷을 했던 것이다.

공은 날아갈 때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바람이 없을 때 드라이버의 비거리가 250야드라면 뒷바람이 초속 2m 정도로 불면 260야드, 맞바람이 초속 2m로 불면 240야드가 된다. 풍속이 초속 2m이면 비거리는 10야드 정도 변한다. 지면 근처에서는 바람이 지면과의 마찰 때문에 속도가 느리고 높은 곳에서는 속도가 빠르다. 따라서 뒷바람이 불면 공이 높이 뜨도록 하고, 맞바람이 불면 공의 탄도를 낮게 임팩트해야 한다.

매우 더운 어느 여름날 보기 최는 버디 김에게 라운딩을 제안했다. 이번에도 보기 최가 이겼다. 버디 김은 드라이버 샷이 평소보다 더 나가 좋아했지만 이상하게 아이언 샷은 늘 그린을 넘어가 낭패를 봤다. 공의 비거리는 백스핀의 영향으로 늘기도 하고 공기 저항으로 줄기도 한다. 기온이 오르면 공기 밀도가 작아져 공기 저항이 줄어들고, 기온이 2도 오르면 비거리는 1야드씩 증가한다. 겨울과 여름의 기온 차가 30도라면 여름철 비거리는 겨울에 비해 약 15야드 증가한다. 실제로 섭씨 30도의 공기 밀도는 0도에 비해 10%정도 작아진다.

두 번이나 패한 버디 김은 보기 최에게 해외 골프원정을 제안해 보기 최는 흔쾌히 따라 나섰다. 가서 보니 그곳은 해발 2000m나 되는 고지대. 버디 김은 평소처럼 공을 힘껏 때렸다. 이게 웬일인가. 공은 약 270야드나 날아갔다. 보기 최도 자신의 공이 20야드 늘어난 240야드가 날아간 것을 보고는 생각에 잠겼고, 그 이유를 곧 깨달았다. 그러나 버디 김은 좋아만 했다. 문제는 역시 그린 근처에서 발생했다. 버디 김의 공은 계속 그린을 훌쩍 넘어가 떨어졌고 보기 최의 공은 사뿐히 온 그린해 여유 있게 버디 김을 이겼다.

고도가 높아지면 공기 밀도와 중력이 작아져 공은 더 멀리 날아간다. 해발 2000m의 높이가 되면 공기 밀도는 해면에 비해 약 18% 낮아지고 중력도 0.06% 작아진다. 고도가 100m 높아지면 비거리는 약 1야드씩 증가한다. 세 번이나 연속으로 라운딩에서 패한 후 버디 김은 보기 김으로, 보기 최는 버디 최로 별명이 바뀌었다고 한다.

공의 무게와 속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구의 자전으로 북반구와 남반구에서 위도에 따라 공의 비거리는 300야드에서 좌우로 약 0∼25㎝의 오차가 생긴다. 포병대의 탄도 계산과 기상청의 일기예보에서도 이 원리는 적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골프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바람·온도·고도 등의 주변 환경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달에서 타이거 우즈의 드라이버 비거리는 얼마나 될까? 달의 중력은 지구의 약 6분의 1이고 공기의 저항이 없으므로 딤플이 필요치 않다. 이론적으로 45도의 론치 각으로 임팩트하면 공의 비거리는 약 5000야드 이상이다. 날아간 공을 찾으려면 GPS를 달아야 하고 클럽 장비들과 골프웨어도 많이 개선해야 할 듯싶다.

김선웅 고려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