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내가 이명박 캠프로? 진대제도 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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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나라당은 14일 오후 4시쯤 보도자료 하나를 e-메일로 발송했다. 이명박 후보가 직접 위원장을 맡은 당 경제살리기특위에 고문 몇 명이 새로 합류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신임 고문단 중 단연 눈에 띈 이름은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었다. 그는 노무현 정부의 최장수 장관을 기록했고 지난해 5.31 지방선거 때 열린우리당에서 공천을 받아 경기지사 선거에도 출마한 인물이다.

하지만 진 전 장관 측은 즉각 부인했다 임형찬 비서실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진 전 장관이 인터넷 신문 기사를 보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놀랐다"며 "한나라당 합류설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펄쩍 뛰었다.

이 후보의 한 측근이 해 준 설명은 이랬다. "20일 전께 이 후보에게 '진 전 장관이 도울 뜻이 있는 것 같다'는 보고가 들어간 것 같다. 그러곤 별 진전이 없었는데 오늘 고문 명단을 발표하자고 하니 이 후보가 비서실에 '진 전 장관도 고문단에 넣지 그러느냐'고 지시했다고 한다. 대변인실은 비서실의 연락만 받고 '의사타진이 다 끝난 것이려니' 하고 보도자료를 냈다."

진 전 장관이 실제로 한나라당에 합류할 의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후보 측의 설명을 100% 믿더라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많다. 이 후보 선대위 내부에서 최소한의 검증 시스템조차 작동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후보 선대위가 이런 식의 망신을 당한 건 이게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엔 강영우 미국 국가장애위 정책위원(차관보급)의 말만 믿고 "이 후보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만난다"고 덜컥 발표했다가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창피를 당했다.

미국 방문 건은 '한.미 외교 관계' 프로토콜에 무지했거나 '한건주의 풍조'가 빚은 참사였다.

이번 진 전 장관 문제는 '우리가 발표하면 따라오겠지. 별수 있겠어'라는 오만함마저 풍긴다.

오죽하면 캠프 내부에서도 "어떻게 당사자에게 확인 전화 한 번 없이 발표하나" "언론에서 좀 비판해 달라"는 소리가 나올까. 직접 확인 절차를 생략한 이명박 후보나 이 후보의 지침을 거르지 않은 임태희 실장의 비서실, 박형준.나경원 대변인의 대변인실이 모두 반성할 일이다.

'지지율 40%' '1등 대선 후보' 같은 수식어들이 이들의 생각을 느슨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남궁욱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