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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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떠난 자와 남는 자(26) 전연 생각지도못했던 일인데다 다들 잠든 한밤이라는 것 때문에 길남이 놀라며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무슨 소리를 하려고 이렇게 말을 거는 것인지 길남은 알 수가 없었다.
길남이 아무 말이 없자 태성이가 옆으로 기듯이 다가왔다.그는누워 있는 길남의 옆에 쭈그리고 앉으며 말했다.
『잠깐 나랑 나갈래?』 『밤에는 자는 거 아니냐?』 『목소리낮추고….』 『나 말이다.한밤에 끌려나갈만큼 너한테 원한 산 거 없다.』 『그런 뜻이 아니다.』 『나 변소도 다녀왔다.무슨말을 하고 싶은 거냐?』 주위를 둘러보면서 태성이 똑같은 말을했다. 『잠깐이면 된다.함께 좀 나갈래?』 『여기서 해도 될 이야기가 아니라면 안 듣는 편이 나을 거 같다.』 『나와.소리내지 말고.따라나와.』 태성이 속삭이듯 말하고 나서 기듯이 방을 빠져나갔다.그의 뒷모습을 어둠 속에서 바라보다가 길남은 천천히 일어섰다.
밖으로 나왔을 때 태성은 숙사 계단 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대뜸 길남이 말했다.
『나는 내일 아침 반이다.잠 자둬야 한다는 건 잘 알텐데 이러냐.』 『너 잠 못 자고 있었던 거 나 다 알고 있었다.』 길남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동삼은 혼자 삶아 먹었냐? 밤에 잠은 안 자고 이거 뭐하자는 짓이냐.』 『소리 내지 마.』 태성이의 목소리에도 어떤 살기같은 것이 비쳤다.태성이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
『너한테는 미안하다.그러나 하나만 묻자.너 나를 믿니 못 믿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밑도 끝도 없이 사람을 불러내놓고 나서,나를 믿니 못 믿니 하다니.』 순간 태성이 덥석 길남의 손을 잡았다.
『같이 가자.』 『무슨 소리냐?』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나는 안다.네가 나를 믿거든 함께 가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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