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재 기자의 웰컴 투 풋 볼 <25> 3년 기다려줄 수 있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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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웰컴투풋볼: “솔직하게 대답해 주세요. 한국 국가대표 감독을 맡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까.”

 파리아스: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않았습니다. 대표팀보다는 클럽에서 더 있고 싶습니다.”

 웰컴투풋볼: “만약 협회에서 간곡하게 요청을 해도 ‘노’라고 하겠습니까.”

 파리아스: “포항 팬들이 보내주신다면 가겠습니다. 하하하.”

 옳거니 싶었다. 포항 스틸러스의 세르지우 파리아스(사진)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 대한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6일 포항 송라 클럽하우스의 인터뷰 자리에서였다.

 서울로 올라와 몇몇 정보통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반응이 시큰둥했다. 파리아스는 감독 후보에서 이미 탈락했다는 것이다. 축구협회의 ‘높은 자리에 있는 분’에게 전화를 했다. 그도 “파리아스는 아닌 것 같은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래서 8일자 파리아스 인터뷰 기사에는 대표팀 관련 내용을 아예 빼버렸다.

 그런데 포항이 K-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파리아스가 다시 유력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 11일 우승 축하연에서 만난 협회의 또 다른 고위인사는 “포항 축구가 정말 강하고 재미있더라. 파리아스가 대단한 인물 같아”라고 말했다.

 그래서 파리아스와 나눴던 대화를 다시 소개한다.

 파리아스는 “한국 대표팀 감독 자리가 ‘독이 든 성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클럽에서는 내가 원하는 시간과 일정대로 팀을 만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대표팀에서는 짧은 소집 기간에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브라질에서도 한국에서도 언론과 팬은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간을 얼마나 주면 자신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을지 묻자 “포항에서 내 색깔을 입히는 데 3년 걸렸다. 3년 정도면 적당할 것”이라고 했다. 사실 포항에서도 위기가 있었다. 올해 전기리그에서 12연속 무승(7무5패)의 수렁에 빠지자 구단 내부에서 경질 얘기가 나왔다. 그러나 파리아스를 데려온 김현식 사장이 “끝까지 간다”며 힘을 실어줬다.

 히딩크가 떠난 뒤 우리는 코엘류-본프레레-아드보카트-베어벡으로 이어지는 ‘단명 사령탑’을 지켜봐야 했다. 사실 무리뉴(전 첼시)와 퍼거슨(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을 합체한 ‘무리거슨’이 와도 한국 축구의 체질을 한달음에 바꿀 수는 없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하고, 시행착오를 겪을 권리가 있다. 국내 감독이 맡아도 마찬가지다.

 파리아스가 우승컵에 입 맞추는 장면을 보면서 축구팬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당신은 기다려줄 수 있습니까?”

정영재 기자 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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