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변한 게 없다" 박근혜 고독한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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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대표는 "정권 교체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원칙적인 지지에 그치지 않고 "이회창 후보의 출마는 정도가 아니다"라고 훨씬 강한 입장 표명까지 했다.

이로써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좌시하지 않겠다'는 발언으로 촉발된 한나라당 내 이명박-박근혜 내분은 봉합 수순에 들어섰다. 그의 입장 표명으로 대구.대전.충남 등 박 전 대표가 강세를 보인 지역에서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원활동이 활발해질 것으로 이 후보 측은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8.19 경선 뒤 이 후보 쪽의 행태를 지적하고 섭섭함을 직설적으로 터뜨렸다.

12일 박 전 대표는 서울 삼성동 자택 앞에서 기자들에게 "당에서 공천권을 왈가왈부하며 패자가 공천권을 가지면 안 된다는 보도를 봤다"며 "그럼 승자가 공천권을 갖고 무소불위로 휘둘러야 한다는 말이냐. 그야말로 구태정치며 무서운 정치 아니냐"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이어 "원칙이 무너지고 과거로 회귀하고 구태정치가 반복되는 것은 그간의 당 개혁을 원점으로 돌리는 것이어서 큰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러면서 "정당 개혁이나 정치발전이 이뤄졌다고 생각했는데 언론 보도를 볼 때 제가 굉장히 실망이 많다"고도 했다.

박 전 대표가 이 후보의 손을 들어주긴 했지만 앞으로 당 운영과 관련해 따질 것은 따지겠다는 의지라고 주변에선 해석했다. 박 전 대표는 전날 "이명박 후보의 회견을 평가해 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내가 한 말에 책임지는 사람이다. 한나라당으로 정권교체는 당원들의 열망"이라고 답했다.

이날 박 전 대표의 입장 표명에 박 전 대표 측 인사들은 "박근혜 식 원칙의 정치다. 대표가 방침을 세웠으니 따를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 분위기였다.

하지만 박 전 대표 측 인사들의 성향에 따라 온도차는 있었다.

경선 당시 대변인을 지낸 김재원 의원은 "이회창 후보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이명박 후보에게는 당 운영에 대한 당부를 남기는 등 적당한 수준에서 절제된 표현으로 입장을 충분히 밝혔다"고 평가했다.

캠프 상임고문이었던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도 "원칙도 밝히고 할 말도 하는 등 전체적으로 아주 잘한 입장 발표였다"고 만족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내보일 수 있는 카드를 다 보인 것 아니냐"며 "오늘은 당 파행에 대한 언급만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나흘간 집에서 아무도 안 만나=박 전 대표의 선택은 나흘간 자택에서 칩거하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다. 고독한 선택이었다. 이 기간 중 박 전 대표 자택에 비중 있는 정치적 인사는 일절 출입하지 않았다. 그는 전화로 주변 인사의 의견을 듣긴 했지만 자기 생각을 밝히진 않았다고 한다. 그는 측근들에게 "내가 말하기 전에 아무도 반응하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만큼 자신의 첫 언급이 대선 정국에 미칠 파괴력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칩거 기간 중 서청원.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홍사덕 전 국회 부의장 등이 박 전 대표와 통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도 양측 간 통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유승민.유정복.이혜훈 의원 등도 박 전 대표와 꾸준히 접촉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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